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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의 인사이트]진념 이헌재, 그리고 김동연

입력 | 2017-07-27 03:00:00


최영해 논설위원

2000년 10월 김대중 정부 후반기 때 얘기다. 진념 경제부총리가 기자실에 내려와 “1인당 2000만 원을 그대로 시행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금융기관 파산 때 고객예금을 정부가 얼마나 보장할지를 놓고 여론이 갈릴 때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11월부터 부실 금융기관의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을 우려해 한시적으로 고객예금 전액을 보장해줬지만 2001년부터 예전처럼 2000만 원으로 되돌릴 참이었다.

진념 이헌재의 생존법

문제는 금융시장 충격이었다. 당초 계획대로 할지, 한도를 올릴지, 시행 시기를 늦출지 3가지 옵션을 진념은 들고 있었다. 기자들 생각도 2000만 원부터 1억 원까지 중구난방이었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투표해 보니 ‘5000만 원’이 제일 많았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 모르겠지만 며칠 뒤 재정경제부는 “내년부터 5000만 원까지만 보장한다”고 발표했다. 우려했던 뱅크런은 없었다. 경제부총리 진념의 정책결정 파워를 가늠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DJP연합으로 집권한 김대중(DJ) 대통령은 1998년 취임 후 김용환 자민련 부총재가 추천한 이헌재를 구조조정을 지휘할 금융감독위원장에 발탁했다. 이헌재는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도왔던 사람이었다. 그의 운신 폭이 좁아 보였지만 특유의 강단과 DJ의 신임에 힘입어 대기업과 금융회사 구조조정을 깔끔하게 해냈다. 하지만 권력 주변의 견제도 만만찮았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이기호는 이헌재가 청와대에 들어오는 날엔 대통령 옆자리를 지키며 독대를 막았다. DJ와의 독대는 재경부 장관 사표를 낸 직후인 2000년 7월 딱 한 번이었다. 금감위원장으로 발군의 실력을 보인 그가 7개월 단명 재경부 장관으로 끝난 데 대해 “경제의 계절이 끝나고 정치의 계절로 접어든 때였다. 금감위원장을 끝으로 떠났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회고록 ‘이헌재 위기를 쏘다’에 나오는 얘기다.

20년도 다 된 일이 생각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를 보는 눈이 DJ와 많이 달라 보여서다. 증세에 불을 지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법인세와 근로소득세 수치까지 제시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법인세 인상은 없다”던 김동연 부총리를 하루아침에 실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명색이 경제부총리인데 너무 코너로 몰아넣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어디에서도 안 들린다. 여당도, 청와대도 김동연을 그저 예산기술자 정도로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영욕사에 남을 김동연

청와대에서 이틀 동안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김동연이 증세에 대한 소신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것은 ‘경제관료 영욕(榮辱)사’에 남을 일이다. 엊그제 새 정부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김동연의 눈이 충혈되고 입술이 부르튼 것을 보면 마음고생이 꽤 컸던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 한국 경제 곳곳에 빨간불이 켜졌는데도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우리는 펀더멘털이 괜찮아 금융대란은 있을 수 없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해 국가적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고졸 신화’ 김동연은 경제부총리를 가문의 영광으로만 여길 일이 아니다.

정책 결정의 프로세스가 뒤틀리고 방향도 이상하다면 대통령이 페달을 밟기 전에 핸들을 바로잡아 주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세금처럼 민감한 문제를 결정하는 데 경제부총리의 존재감이 없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헌재도, 진념도 경제 수장의 자리를 지키려고 부단히 싸웠다. 국무회의장 대통령 옆에 앉은 김동연의 목소리가 지금보다 커졌으면 좋겠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