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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종대]부시언지(賦詩言志)

입력 | 2017-07-27 03:00:00


‘만리장성은 여전한데 옛 진시황은 어디서나 볼까(萬里長城今尙在, ;見當年秦始皇).’ 1956년 11월 소련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자마자 보낸 주중 소련대사에게 마오쩌둥이 한 말이다. 청나라 장영이 담장 때문에 이웃과 싸우던 고향집에 보낸 7언 절구의 일부로 최고의 담장인 만리장성도 진시황이 죽으니 별게 아닌데 양보하며 살라는 은유였다. 마오는 이 시 한 수로 건국 초기 소련에 양도했던 영토를 되찾으면서 경제적 협력까지 얻어냈다. 비록 나중엔 사상과 국경 분쟁이 벌어졌지만.

▷중국 춘추시대 부시언지(賦詩言志·시를 건네 마음의 뜻을 전하기)는 일종의 외교술이었다. 당시 제후들은 외교에 활용하기 위해 시가(詩歌)를 채집하는 관료를 둘 정도였다. 공자는 주나라 때부터 유행한 3000여 편의 시 가운데 311편을 뽑아 중국 최초의 시집 시경(詩經)을 펴냈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중국의 한시는 청나라 말까지 약 30만 수라고 한다.

▷중국인이 고교까지 배우는 한시는 300수가 넘는다. 지식인이라면 200수 이상, 일반 서민도 100수는 암송할 줄 안다. 외교에서 입장이 곤란할 때 한시는 매우 유용하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당시 중국 외교부는 북한을 규탄해 달라는 한국 측 요구에 “천하유대용자(天下有大勇者·천하에 큰 용기를 가진 자는), 졸연임지이불경(猝然臨之而不驚·갑자기 큰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는다)”이라고 답했다. 북측 소행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한국에 참으라는 메시지였다.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25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고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蠶要溫和麥要寒)”라는 한시를 읊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과 관련한 불만 표시라는 추측이 나온다. 한시를 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그럼에도 “(나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개혁을 기정사실화하는 일종의 부시언지일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로부터 다른 요구를 받은 문 총장은 ‘대통령은 얼마나 더할까’ 싶어 건넨 말이라고 한다. 내가 20년 이상 겪은 문 총장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