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외면한 좌파에게 앙드레 지드가 말했다 “지식인은 둥지를 틀지 않는다” ‘둥지’를 튼 진영이 집권하면 권력의 단맛 떨치지 못해… 있는 문제도 눈감거나 사실 왜곡 지식인으로서 자존심 없으면 나라 어지럽히는 도적일 뿐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이어 던지는 질문. “내가 잘못된 겁니까, 아니면 학문이란 게 원래 이런 겁니까?” 낮은 적실성(relevance)의 문제, 즉 학문이다 뭐다 해 봐야, 또 학자니 지식인이니 해 봐야 세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었다. 부끄러웠다. 명색이 공부를 직업으로 해 왔던 사람이라.
장면 하나를 더 소개하자. 선배 학자 한 분과 마주한 점심 자리, 그가 앙드레 지드의 이야기를 되새겨 주었다. 공산주의자였던 지드, 하지만 막심 고리키를 문병하기 위해 갔다가 소련을 보고 크게 실망한 후 이를 ‘소련 방문기’로 엮어 낸다. 좌파 지식인들이 그의 ‘변절’을 비난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러자 그는 진실을 외면하는 이들을 공산주의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라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은 둥지를 틀지 않는다.”
일종의 자책일까? 이 두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저급한 정책담론들을 생각할 때마다, 학문이란 게 이런 거냐고 묻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식인들이 물어야 할 것을 제대로 묻고 짚어야 할 것을 제대로 짚어왔다면 우리의 담론 수준이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담론 수준은 바닥이다. 일례로 개헌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예전 같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개헌을 하자면 당연히 이와 관련된 것들, 즉 새로운 시대에 있어 국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며, 또 시장 및 공동체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대부분의 지식인은 4년 중임의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따위의 정치권이 던져 놓은 질문을 따라가기에 바쁘다. 설령 이 문제가 개헌 문제의 핵심이라 하더라도 문제의식은 좀 더 크고 넓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 문제뿐이겠나. 교육문제, 산업구조 조정의 문제 등 거의 모든 문제가 그렇다.
시대정신과 문제의식이 사라진 정치와 정책과정에서는 힘과 스타일이 판을 친다. 힘이 있으면 먹고 힘이 없으면 밀리고, 어떤 행동으로 어떻게 보이느냐의 스타일 문제가 무슨 문제를 얼마나 잘 푸느냐의 실질(substance)의 문제를 앞서 간다. 이 살벌하고도 허무한 세상에 대해 지식인들의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난 인사청문회 때를 기억해 보라. 허위 혼인신고, 논문 표절, 음주운전, 탈세 등의 문제에 대해 많은 진보적 지식인이 입을 닫았다. 일부는 ‘로맨스’라 강변하기도 했다. 그들이 욕하던 보수적 지식인들이 지난 정부 때 했던 짓과 똑같은 짓을 한 것이다. 차라리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임명해야 하는 논리를 만들기라도 하지, 어떻게 있는 문제에 눈을 감거나 사실을 왜곡할 수 있나.
우리와 같이 진영논리가 강한 사회에 있어서의 ‘둥지’는 단순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둥지’를 튼 진영이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의 조각이라도 구경할 수 있고, 그 진영에 속한 대중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쉽게 떨칠 수 없는 달콤함이 그 안에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래서야 되겠나.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거울을 본다. 나는 어떤 모습인가? 새로운 시대정신과 문제의식으로 물어야 할 것을 묻는 지식인의 모습인가. 아니면 진영논리 속에서 ‘내로남불’의 의미 없는 편들기나 하는 난적(亂賊), 즉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나 도둑’의 모습인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