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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노지현]인간다움이 AI를 이길까

입력 | 2017-07-27 03:00:00


노지현 사회부 기자

미국의 구인구직 정보업체 커리어캐스트는 매년 200개의 직업을 분석해 ‘미국 최악의 직업’을 선정한다. 스트레스, 수입과 미래 전망, 근무 환경을 기준으로 1위부터 200위까지 줄을 세운다. 혹자는 이 순위를 ‘종말(終末) 직업 명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위에 머물수록 얼마 못 가 사라질 확률이 높은 직업이라는 의미일 게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200위를 기록해 최악으로 꼽힌 직업이 신문기자다. 신문기자의 뒤를 벌목꾼, 방송인, 디스크자키, 군 사병, 해충방제업자, 소매업자, 광고판매업자, 택시운전사, 소방관이 잇고 있다. 상위권을 차지한 직업은 이른바 STEM(과학, 공학, 기술, 수학)이나 보건의료와 관련된 분야였다.

요약하자면 전문적 기술과 데이터를 다루는 업종은 살아남고, 인간의 품이 들어가지만 기계가 대체 가능한 직업은 사라진다는 뜻일 것이다. 나 같은 신문기자에게 암울한 이런 ‘경보’는 수년 전부터 울려왔다. 실제 세계 유수의 통신사에서는 증권 시황이나 스포츠 경기 결과만 대입하면 인공지능(AI)이 자동으로 기사를 써 내고 있다.

이미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그것도 사람이 자발적으로 말이다. 구청 창구에서 민원서류를 떼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구청 1층에 비치된 민원서류발급기에서 버튼을 조작하면 30초도 안 돼 웬만한 서류는 다 뗄 수 있다. 창구에서 발급받으면 1000원이 들지만 발급기를 이용하면 500원이다. 심지어는 이기(利器)에 둔감했던 중장년층도 스마트폰 정도를 쉽게 이용할 줄 알게 되면서 창구를 덜 활용하고 있다. 가정이나 회사에서도 ‘민원24’ 같은 웹사이트에 들어가 출력 버튼만 누르면 서류가 나온다. 역할을 서류 발급으로만 한정한다면 공무원도 곧 종말 직업 명단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에 맞춰 서울의 자치구들은 공무원을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다. ‘인간’을 더 강조하는 방향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서울 강남구는 2월 ‘WOW 강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7, 8급 직원 50명을 선발해 글쓰기 교육과 정책개발 워크숍을 한다. 유명 강사가 수많은 정보에서 핵심 이슈를 찾아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는 방법을 가르친다. 구태의연한 보고서가 아니라 핵심을 간결하게 표현하도록 만들어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 정책개발 워크숍에서는 전문 연구기관과 함께 정책과제를 찾아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한다.

사람 냄새나는 공무원이 되자는 결의도 다진다. 서울 노원구는 5월 말 직원 500명이 영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관람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이 악화된 주인공 다니엘이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심한 관료주의로 좌절을 겪는 모습을 그렸다. 복지제도가 잘돼 있다는 영국에서조차 이렇게 경직된 공직사회의 단면을 생각해 보고 민원인을 대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서울 용산구는 17일 한국야쿠르트와 업무협약을 맺고 8월부터 홀몸노인이 있는 972가구에 건강음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1인 가구의 위기를 야쿠르트 배달원을 통해 더 빨리 알아채자는 취지다. 주 3회 음료를 전달하는 배달원은 이상이 감지되면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알려준다.

인간은 어떤 점에서 기계보다 우월할까. 인간미라는 요소는 기계에 비해 한계효용이 높을 수 있을까.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모든 직업인에게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