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1심 선고]김기춘 실형-조윤선 집유 선고
수갑 차고 풀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7일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왼쪽 사진). 1심 재판부는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국회 위증 혐의만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걸어 나오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월 구속돼 약 5개월간 같은 법정에서 함께 재판을 받아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의 운명은 27일 1심 선고공판에서 극적으로 엇갈렸다. 재판장이 1시간가량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환자복 수의를 입은 김 전 실장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반면 조 전 장관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차분한 표정으로 판결문 내용을 경청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 전 장관은 약 6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이날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 조윤선,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무죄
그러나 조 전 장관이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다”고 허위 증언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은 이미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의 실상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서울구치소를 나서면서 기자들과 만나 “(항소심)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재판부가) 저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은 재판에서 자신의 변호인이었던 남편 박성엽 변호사(56)의 차를 타고 귀가했다. 박 변호사도 “제가 (재판부에) 오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기춘이 블랙리스트 범행 ‘정점’”
조 전 장관과 달리 김 전 실장,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60·구속 기소), 김상률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57) 등 블랙리스트 사건의 다른 공범들에게는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김 전 수석은 이날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 등이 문화예술계 인사 및 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 명단을 작성하고 이를 보조금 지급 등에 실제로 적용한 게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예술위 직원 등을 ‘협박’했다고 볼 행위는 없었다”며 강요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문체부 공무원에 대한 사직 강요 혐의는 사안별로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소극적이었던 문체부 실장 3명에 대해 사직을 강요한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이 ‘나쁜 사람’으로 지목한 노태강 당시 문체부 체육국장(57·현 문체부 2차관)에 대해 김 전 장관과 김 전 수석이 사직을 강요한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문체부 실장들은 1급 공무원이어서 신분 보장 대상이 아니지만, 당시 2급 공무원이던 노 전 국장은 공무원법상 신분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
정성규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학·사회학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