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책임 못 질 “증세 없다” 발언
자료 출처 하나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증세 논의는 여당 주도로 은밀하게 이뤄졌다. 이런 비밀주의 덕분에 정치적으로 이슈를 선점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세금이라는 위험한 뇌관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고 있는지 의문이다. 추 대표는 부자 증세에 대해 “소득 재분배를 위한 방안”이라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고 했다. 이 두 발언의 모순과 위험성을 당사자들은 정확히 알까.
이런 상태를 방치한 증세는 새는 바가지로 우물에서 계속 물을 퍼 나르되 바가지 용량만 더 늘리자는 얘기다. 물독에 몇 방울 더 채울 수는 있겠지만 물지게꾼은 금방 지쳐 쓰러진다. 실효세율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부자들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그게 세금의 원리다. 노무현 정부도 “우리나라 소득세의 재분배 효과가 다소 낮은 것은 우리의 과세자 비율과 평균 실효세율이 선진국보다 크게 낮기 때문”이라고 내부 보고서(재정경제부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2006년)에서 밝혔다.
정말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이려면 비과세·감면제도와 과도한 면세자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공짜 점심을 원상복구하는 개혁이 추진되면 서민중산층에 대한 세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5년 내내 서민 증세 없음’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 발언은 두고두고 정권에 부담이 될 것이다. 서민 증세 논란이 일면 정부와 여당은 명목세율은 그대로라고 항변하겠지만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세법 파동도 명목세율과는 무관한 수십만 원의 부담을 두고 벌어진 논란이었다.
증세안이 기정사실화하는 동안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자기 정치’를 했다. 재정전략회의에서 그가 침묵만 한 것은 아니었다. 두 가지 발언을 했다. 먼저 재정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178조 원의 재정 조달과 관련해 세입 측면에서는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지출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뼈를 깎는 각오로 하겠다”고 했다. 증세 이슈에선 발을 빼고 재정당국이라면 당연한 ‘지출 줄이기’에 고개를 파묻었다.
박근혜 정부가 비극적 결말을 맞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얻은 소득은 내가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동의해야 하는 합의의 영역이 있다는 믿음이다. 이념을 초월한 공감대다. 증세가 무조건 조세저항으로 이어지지 않는 환경이 마련됐는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토론 절차를 건너뛰었다. 조세저항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정부에 속고 있다고 생각할 때 봇물처럼 터지는 배신감의 발로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