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8일 오후 11시 41분 자강도 무평리 인근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의 2차 시험 발사를 전격 단행했다. 북은 고각 발사한 이 미사일이 최대고도 3724.9km까지 상승해 998km를 47분 12초간 비행한 뒤 설정된 수역에 정확히 탄착했다고 주장했다. 4일 1차 발사 때보다 고도가 900km 이상 늘어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사거리가 1만 km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것이 뚜렷이 입증됐다”고 호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오전 1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해 “금번 미사일 발사는 동북아 안보 구도에 근본적 변화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이 핵탄두로 미 본토까지 칠 능력을 확보할 경우 동북아 역학구도의 판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우리 안보가 백척간두로 내몰리는 것은 물론 미국의 아태지역 전략도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문 대통령이 우리 미사일의 탄두중량을 늘리기 위한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협상 개시 등 강력 대응을 지시한 것도 절박한 상황 인식 때문이다. 이날 한미 군 수뇌부는 대북 군사옵션을 처음 논의했고, 양국 군은 동해안에서 연합 미사일 사격훈련을 다시 실시했다. 어제는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국의 장거리 폭격기 B-1B 랜서 2대가 한반도로 출격해 대북 무력시위를 벌였다. ‘4월 위기설’을 넘긴 한반도에 ‘8월 위기설’이 다시 불거지는 엄중한 상황이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문재인 정부가 대화와 보상으로 북의 핵 포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부터 버려야 한다. 북의 도발 중단을 전제로 핵 동결, 군비통제 등을 거쳐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골자인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현 단계에선 비현실적인 정책 목표다. 김정은 체제의 붕괴까지 상정한 고강도 제재와 압박이 아니라면 그가 생각을 바꿀 리 만무하다. 미국과는 500kg으로 묶인 한국의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을 대폭 늘리거나 아예 없애고, 미 전술핵 재배치 등을 포함한 비상한 대응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원치 않지만 불가피하다면 군사적 해법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함께 웃을 수 있는 해법은 현실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