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ICBM 2차 도발/김정은의 속셈은]北, 새벽-오전 전례 깨고 한밤 감행 ‘정전일 도발’ 한미 예상도 뒤집어… 한미 감시능력도 시험해 본듯 평북 구성서 발사 움직임 노출 뒤 中국경과 가까운 자강도서 쏴 한미, 中과 충돌우려 타격에 제약
발사 준비 북한 조선중앙TV가 29일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의 2차 시험 발사 준비 장면. 북-중 국경에서 불과 50km 떨어진 자강도 무평리 일대 발사장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려 있던 탄도미사일을 지상 거치식 발사대에 세우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 캡처
○ 워싱턴 시간대 겨냥한 심야 도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8일 밤 기습적인 ICBM급 ‘화성-14형’ 발사를 승인한 서명. 북한 노동신문 캡처
이번 ICBM급 2차 도발이 4일(1차 도발)에 이어 미 본토에 대한 핵타격 경고라는 김정은의 메시지도 뚜렷이 읽힌다. 북한이 화성-14형을 쏜 시각(28일 오후 11시 41분경)은 워싱턴(28일 오전 10시 41분경)에서는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대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인들의 충격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금요일 오전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 성동격서(聲東擊西)식 발사 장소 속이기
도발 장소도 철저히 속였다. 당초 북한은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탄도미사일을 실은 이동식발사차량(TEL)과 관측레이더 가동 징후를 미 정찰위성 등에 잇달아 노출시켰다. 또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징후를 보이는 한편으로 로미오급 잠수함을 보름 가까이 동해상에 출항시켰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구성 지역에서 ICBM급 미사일을 쏘거나 SLBM 도발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왔다.
하지만 실제 도발은 구성에서 동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자강도 무평리에서 이뤄졌다. 북-중 국경에서 불과 50km 떨어진 이 지역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들이 밀집돼 있다. 유사시 한미 연합군이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 우려 때문에 선제타격을 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군 당국자는 “연례 한미 연합 군사훈련 때마다 개전 초기 이 지역의 북한 핵·미사일 기지를 최단 시간 내 파괴하는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는 전략적 이점으로 작용한다. 북한은 이 지역 깊숙한 곳에 기지를 건설해 화성-14형을 비롯한 ICBM급 미사일을 배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 고위 소식통은 “자강도 지역은 미 본토를 향해 ICBM을 쏘기에 지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최적의 장소”라며 “이번 화성-14형 2차 도발도 대미 실전 사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 영상과 사진을 도발 14시간 여 후인 29일 오후 이례적으로 신속히 공개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도발에 앞서 김정은이 철저히 눈속임 행보를 보였던 것과 대조된다. 북한이 일주일 전부터 평북 구성 일대에서 ICBM 도발 징후를 보이자 한미 군 당국은 초긴장 상태로 관련 동향을 주시했다. 김정은이 정전협정 64주년인 27일(북한은 전승절·戰勝節)을 ‘도발 디데이’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26일경 김정은과 북한군 고위 지휘관들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 행렬이 평북 구성 일대에서 포착되자 도발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김정은은 27일 평양의 인민군 묘지를 참배하면서 보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ICBM 도발도 없었다. 군 당국이 28일 오전 “도발 임박 징후가 없다”고 밝히면서 김정은이 다른 날을 고를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북한은 그날 밤 화성-14형을 전격 발사했다. 이어 김정은이 27일 ‘화성-14형의 28일 밤 시험발사’를 친필로 승인한 사실을 공개했다. 군 관계자는 “ICBM급 2차 도발은 김정은이 주도면밀하게 기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