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진 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
미국 건국 초기, 헌법을 만든 헌법학자들은 ‘국민 여론을 국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했다. 그들은 대중(people)이라는 특성과 본질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였다. 그 결과 정부의 정책 결정에서 국민 여론은 상당히 제한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그건 다수의 대중은 종종 변덕스럽고 당파적이고 지나치게 단기적으로 사고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수 여론이라는 이유로 개인들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국 헌법은 일반 국민의 여론은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정책 결정에서 일반적인 여론보다 전문가의 의견이 채택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미국인은 개인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의회는 다수의 여론과 상관없이 성적소수자 등 개인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입법을 해 오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초기 헌법학자들이 후대 정치인들에게 희망하고 기대했던 것들이다. 정치는 대중의 바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제해야 하고, 대중의 의견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수많은 정책이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필자 본인도 전공분야 이외의 다른 분야는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정책 내용을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고 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책 결정을 한다면 자칫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올바른 결정은 정확한 정보와 전문지식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여론에 의한 정책 결정은 동전 던지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해결이 필요한 수많은 정책 문제가 있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정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나치게 다수 여론에 의존하기보다 정확한 정보와 전문지식을 통해 장기적이고 전체 국민과 국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임동진 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