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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호모부커스]군주의 저술

입력 | 2017-07-31 03:00:00


표정훈 출판평론가

군주가 본격적으로 저술을 하기는 어렵다. 지식과 필력을 갖췄더라도 국정을 돌보느라 시간이 없다. 철학자이기도 했던 로마 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돋보이는 이유다. 그의 ‘명상록’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군주가 저술한 사실상 유일한 철학 고전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읽힌다. 이 밖에 기원 후 1세기의 클라우디우스 1세가 에트루리아와 카르타고의 역사를 썼고, 4세기 중반 율리아누스 황제는 철학과 종교에 관한 글을 썼다.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7세는 외교에 관한 ‘제국의 운영’, 궁정 예법과 의식을 기록한 ‘비잔틴 궁정 의식’, 비잔티움의 지방 행정 제도인 테마에 관한 책 등을 집필했다. 중국에서는 아들 조비가 추존하여 사후에 위나라의 태조 무제(武帝)가 된 조조가, ‘손자병법’의 핵심을 정리하여 해설한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를 남겼다. 조비도 시와 문학론을 저술하여 중국 문학사에 이름을 올렸다.

청나라 강희제는 ‘성조인황제어제문집’이 있다. 그 뒤를 이은 옹정제는 만주족이 세운 청 제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내린 명령을 포함시킨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을 직접 편찬하다시피 하였다. 건륭제는 ‘청고종어제문집’ ‘청고종어제시집’ ‘낙선당전집’ 등을 남겼다. 건륭제는 평생 4만 수가 넘는 시를 지어 중국 역사상 최다작 시인이라는 말도 듣지만, 시의 수준은 그저 그런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선통제 푸이(溥儀)는 영욕의 삶을 회고한 ‘나의 전반 생’(1964년)을 남겼다.

근대 유럽에서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 한 해 전인 1739년 ‘반(反)마키아벨리론’을 저술했다. 정치에서 도덕을 배제하고 권모술수의 필요성을 강조한 마키아벨리에 반대하면서, 도덕적 군주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수정을 거쳐 1740년 익명으로 출간됐지만, 프리드리히 2세의 저술이라는 사실이 곧 알려졌다. 프리드리히 2세는 현실에서는 마키아벨리의 노선을 따랐다.

조선의 임금 중에는 정조가 유일하게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비롯한 많은 문헌의 사실상 저자로 여겨진다. 세종은 탁월한 출판기획자이기도 하였다. 역사상 명군들은 꼭 자신의 저술이 아니더라도 많은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떳떳하며 자신감이 크다는 뜻이다. 기록에 대한 태도로 민주공화국 시대 지도자들을 평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