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경제부 차장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이달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육아와 교육 부문을 눈여겨봤다. 새 정부는 “육아 문제부터 국가가 책임을 지고 수행하는 것이 한국 공동체 소멸을 막는 일의 시작”이라고 판단했다. 또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기조 위에서 진로맞춤형 교육, 선진국 수준의 교육여건 조성,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기초학력보장 등 공교육을 혁신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선언이었다. A4용지 193쪽 분량의 ‘100대 국정과제 487개 실천과제’ 어디에도 국민이 추가 부담하거나 새로 책임져야 할 일은 없었다. 약속대로만 실현된다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지옥 탈출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강조한다. 들을 때마다 가슴 뛰는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구체적 질문으로 들어가면 쉽지 않은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한국 대입 수험생에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1년에 단 1회’ 평등하게 제공된다. 그날 몸이 아프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엄마가 실수로 반입금지 품목인 휴대전화를 도시락에 넣는 바람에 시험장에서 쫓겨나도 모두 ‘개인의 책임’이다. 국가는 시험 감독을 공정하게 하고, 점수를 정의롭게 통보하면 그만이다. 반면 미국 수능 SAT는 1년에 7차례나 실시되고, 초중고교생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미국처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평등한 기회’란 멋진 말도 상대적일 수 있고, 다른 차원의 불평등이 숨겨져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자는 제안이다.
역대 정부들은 ‘장밋빛 전망’으로 시작해 ‘NATO(No Action Talking Only·말만 많고 실천은 없는) 정부’란 비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계승하려는 노무현 정부도 그랬다. 새 정부는 NATO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부터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 실천과 성과를 생각하며 약속하고 다짐해야 한다. 큰 기대가 무너지는 실망과 절망이 지옥 같음을 우린 이미 너무 많이 겪었다.
부형권 경제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