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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도서관]기계문명의 감각을 시로…‘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입력 | 2017-08-01 15:21:00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에서 기계문명의 감각을 시로 표현한 이원 씨. 동아일보DB


‘마우스를 둥글게 감싼 오른손의 검지로 메일을 클릭한다. 지난밤에도 메일은 도착해 있다.

캐나다 토론토의 k가 보낸 첨부 파일을 클릭한다. 붉은 장미들이 이슬을 꽃잎에 대롱대롱 매달고 흰 울타리 안에서 피어난다. k가 보낸 꽃은 시들지 않았다 (…) 검색어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0개의 카테고리와 177개의 사이트가 나타난다. 나는 그러나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원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중 일부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는 인간성과 충돌하는 인터넷 시대를 포착한다. 동아일보DB


이원 씨의 이 시가 실린 시집 제목은 ‘야후!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뜬다’이다. 시집은 검색포털 ‘yahoo!’가 인터넷의 대명사이던 때에 나왔다. 야후의 세력은 시들었지만 인터넷의 물결은 전 세계를 뒤덮었다.

그의 시에서 인터넷으로 받은 꽃 그림은 시들지 않고, 클릭 한 번에 웹진 한 장이 휙 넘어간다. 지도를 클릭해 따라가니 화엄사 대웅전이 뜨고 목탁 소리도 지원된다. ‘합장을 하며 지리산 콘도의 60% 할인 쿠폰을 한 매 클릭한다’. 이 인터넷의 바다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물을 때 시적 화자는 답할 수 없다. 답할 수 있는 건 ‘나는 클릭하기에 존재한다’는 것뿐이다(아마 지금은 ‘스마트폰을 터치하기에 존재한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시집 제목은 금강경의 ‘千江有水千江月’에서 나왔다.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비친다’는 이 구절은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은 결국 하나라는 뜻으로 모아진다. 천 개의 강물에 비친 달들을 보고 ‘진짜 달은 어디에 있는가’를 물을 때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면 된다. 그런데 야후!의 강물에 비친 천 개의 달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 찾으려 해도,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물으려 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천 번의 클릭을 해도 그렇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