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지역구에 D고등학교가 있다. 그 학교 텃밭에 옥수수가 자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과 거의 15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십대 중반에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전에 그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힘든 길이겠지만 원하는 것을 하며 살면 되지 않겠느냐는 답장을 받았고 그 편지가 보잘것없다고 느낀 나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느새 정년을 앞둔 선생님이 D고등학교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무덥고 습한 오후에 학교로 갔다.
이야기를 나누던 교무실에서 나와 선생님은 학교 정원과 텃밭을 보여주었다. 방울토마토, 케일, 깻잎, 그리고 옥수수들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심고 가꾸는데 특히 옥수수는 고향인 강원도에서 종자를 가져와 뿌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직파 방식이겠지, 한 곳에 서너 알씩 땅에 묻어두는. 잘 익은 건 쥐들이 먼저 알고 갉아먹는다며 웃으시더니 선생님이 성큼성큼 텃밭으로 들어가 옥수수를 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싸주신 옥수수를 들고 작업실로 갔다. 다섯 개의 옥수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어쩐지 노란 생명력으로 빛을 발산하는 듯한 외떡잎식물의 단단한 열매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책에서 본 “언어의 관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옥수수를 옥수수라고 말하는 게 부족한 것 같았다. 문청(文靑) 시절의 그 책을 꺼내보았더니 이런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환기”되는 어떤 신비라고.
D고등학교 텃밭의 옥수수가 다 익었다. 한여름 어느 오후는 옥수수 하나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한 알 한 알 햇빛의 맛이 농축된 옥수수를 먹다 말고 생각에 잠긴다. 보다 나답고 배려하며 나누고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