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완공을 앞두고 평양 여명거리를 돌아보는 김정은. 그 뒤에서 웃고 있는 북한 권력자들은 이런 신도시 개발의 최대 수혜자들이기도 하다. 동아일보 DB
주성하 기자
“김정은이 호화거리를 지을 막대한 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북 제재는 정말 북한의 주장대로 무용한 것 아닐까.”
하지만 이 칼럼을 읽고 나면, 이런 거리 건설에 김정은은 1원도 쓰지 않았으며 다른 호화거리 건설이 또 시작될 것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느 요지에 아파트 몇 동을 짓기 위해 건설주는 우선 투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은행이 유명무실해 담보 대출 같은 것은 없다. 북한 고위 권력층이 저축한 뇌물 자금과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주’의 달러를 끌어내야 한다. 어느 레벨의 권력과 돈주를 끼우는지가 곧 건설주의 능력이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고위간부 정도를 끼우면 최상위 건설주에 속한다. 권력층 역시 돈을 불리기 위해 건설주라는 하수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권력층은 직접 나서는 대신 아내나 자녀를 대신 내세운다.
투자금을 약속받으면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내각 국토성, 인민위원회 등 7∼9개 부서의 승인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매번 투자한 권력자의 힘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소 수만 달러의 뇌물도 써야 한다.
이후 인력은 건설기업이나 군 건설부대에 아파트 몇 채를 주기로 하고 끌어오고 건축자재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180m²(약 55평) 이상 대형평수가 대세인데, 보통 20층 이상에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2대 이상 설치된다. 입주자들에게 매달 돈을 거둬 24시간 전기 공급도 가능하다. 이 돈을 배전소와 발전소에 배급 및 석탄구입비 명목으로 주고 전기공급 우선권을 받는다. 이는 전력 생산 같은 국가 기간산업까지 개인들이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가 완공되면 투자금과 기여도에 비례해 이익을 나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건설 기획 단계에선 최종 분양가의 10분의 1만 투자해도 아파트 한 채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평양에 존재하는 ‘강자의 룰’이다. 권력 없는 돈주처럼 ‘송사리’들은 정보를 알아도 초기 분양에 참여할 수도 없고, 중간 단계에서나 분양가 절반 이상을 투자하고 낄 수 있다.
북한의 대다수 아파트 건설은 이런 식이다. 큰돈이 있다면 누구나 부동산 개발에 뛰어들려고 하지 절대 자식에게도 빌려주지 않는다. 민사법도 제대로 없어 북한에선 “빌려준 돈 찾는 것은 나라 찾기 다음으로 힘들다”란 말이 있다. “돈 빌린 사람은 노력영웅이고, 빌려준 돈 받은 사람은 공화국영웅”이란 말도 있다.
이런 메커니즘이 이해됐다면 김정은이 호화판 거리를 세우는 방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뒤봐주는 권력층 자리에 김정은을 갈아 끼우면 된다.
김정은이 나서서 어떤 목 좋은 자리를 둘러보고 신도시를 세우라고 지시한다. 이 지시 하나로 승인 도장이 필요 없는 엄청난 부지와 건설 인력이 확보되며 철거 저항도 사라진다. 그 다음부턴 구획을 떼어 갖기 위한 보위성, 무역성 등 권력기관의 암투가 벌어진다. 공공건물도 지어야 좋은 구획이 차려진다. 이후 기관은 투자금을 모으는데, 이때 하수인을 내세워 세탁된 권력자의 돈이 대거 유입된다. 김정은이 지시한 공사판은 빠른 완공이 확실해 위험 부담도 매우 적다.
거리가 완공되면 김정은이 나타나 교수나 예술인 등 자기가 생색 낼 수 있는 수혜 계층을 지목한다. 자기 몫은 확실히 챙기는 것이다. 김정은이 먼저 먹고 나면, 투자자가 달려들어 지분에 따른 분양 파티를 마무리한다. 아파트 한 채가 수십만 달러에 팔려 나간다.
미래과학자거리와 여명거리로 한몫을 챙긴 평양의 권력층과 이에 유착한 돈주들은 지금 김정은이 다시 개발할 곳을 찍길 손꼽아 기다린다. 김정은에겐 나쁘지 않은 거래다. 제재가 무용하다는 대외 선전은 물론이고 체제 유지에 꼭 필요한 이들과의 공생 관계도 다질 수 있다. 핵미사일 개발로 어떠한 대북 제재가 시작돼도 김정은과 권력자들이 의기투합한 신도시 개발이란 투기판은 계속될 것이다. 탐욕에 들뜬 눈들이 평양에서 번뜩이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