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작가 이기호 씨. 동아일보DB
《회사 정문에 막 도착했을 무렵, 어머니가 들고 있던 초록색 비닐우산을 내려 그의 몸을, 그의 정면을 가려 주었다. 머리 위가 아닌 그의 얼굴을 가린 것이었다. 하지만 초록색 비닐우산은 초록색 비닐우산일 뿐, 그는 반투명하게 보이는 초록색 비닐우산 너머로 자신의 아버지가 택시회사 사장에게 계속 뺨을 맞고 있는 걸 똑똑히 보고 말았다. 어머니는 굳은 듯 그렇게 오랫동안 비를 그대로 맞으며 그의 정면을 우산으로 막아주었다. 그는 처음엔 어머니가 자신의 시야를 가려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후에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들이 아닌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기호 소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중에서
어머니 손을 붙잡고 아버지 회사를 찾아간 아들이 본 것은 사장에게 뺨을 맞는 아버지다. 신고 감이지만, 그랬던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가려준 반투명우산 너머로, 아들은 그때는 보지 않아도 되었을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