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2004년 4월 탄핵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49석에서 152석의 국회 과반 의석으로 압승을 했을 때 이들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그해 정기국회를 앞두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4대 중점 법안(사학법 개정, 신문법 제정, 과거사법 제정)을 포함한 ‘100대 개혁입법 과제’를 발표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정국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2년 넘게 이어진 국가적 논란 속에서 여당은 ‘개혁독재’라는 오명(汚名)을 떠안았을 뿐 건진 것이 없었다. 국보법은 일점일획도 고쳐지지 않았고,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의 강행 처리로 개정된 사학법은 2007년 7월 재개정됐다. 그사이 노무현 정부가 내걸었던 ‘100대 개혁입법 과제’는 ‘50대 개혁입법 과제’로 축소됐다가 나중엔 흔적도 찾기 어려워졌다. 반면 ‘4대 악법 저지’ 투쟁을 이끌었던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보수 진영의 새로운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노란 완장’이 세상을 뒤흔들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 건 최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함께 마무리된 7월 임시국회 결과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국회 협상 과정에서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협상을 이끈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를 향해 “적폐세력과 뒷거래”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 “배신자” “정계 은퇴” 등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의 공약을 ‘그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다. 추경 통과가 임박한 지난달 22, 23일 주말엔 1000통이 넘는 문자폭탄을 받았다. 당내 일부 의원은 협상 결과를 두고 ‘누더기’ ‘반 토막’이라며 문자폭탄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임시국회는 일단락됐다. 이제 본 게임인 9월 정기국회가 다가오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25, 26일 1박 2일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다. ‘100대 국정 과제’의 입법과 현실화를 위한 논의의 장이다. 때를 맞춰 민주당 일각에선 “국민의 힘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편 가르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부 극렬 지지층에 권력이 의지하는 순간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은 깨질 수밖에 없다. 선거 때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번엔 달라져야 한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