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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지구의 눈물

입력 | 2017-08-04 03:00:00


지구의 눈물 ― 배한봉(1962∼)

둥근 것들은
눈물이 많다, 눈물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칼로 수박을 쪼개다 수박의 눈물을 만난다
 
(…)
 
그렇기 때문인가? 사람들은
둥근 것만 보면
깎거나 쪼개고 싶어 한다
지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숲을 깎고 땅을 쪼개 날마다 눈물을 뽑아 먹는다
번성하는 문명의 단맛에 취해
드디어는
북극의 눈물까지 먹는다


 
여름철이 되면 가장 많이 먹는 과일이 수박이다. 우리에게 수박과 선풍기가 없다면 여름을 무슨 맛으로 버틸까. 그런데 수박이 수박으로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여기 있다. 배한봉 시인은 아마도 더웠을 어느 여름 날, 둥글둥글 시원시원한 수박을 칼로 자르려다가 멈칫하고 만다.

시인은 수박을 자르려다 말고 생각을 이어나간다. 이 둥그런 것을 자르면 저 안에 가득 찬 과즙이 흘러나올 것이다. 오늘은 과즙의 달콤함에 혀가 반응하기 전에 시인의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저 둥근 수박은 그 둥근 모양으로 인해 이미 원만하며 훌륭한데 칼을 대는 것은 미안한 일이 아닐까. 저 안에 있는 과즙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수박의 것일 텐데. 수박의 소중한 눈물을 내가 너무 주책없이 먹고 즐겼던 것은 아닐까. 시인은 둥근 모든 과실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과거 둥근 모든 것들에게 자행했던 일들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많이, 쉽게 먹었다고 말이다.

수박즙이 수박의 눈물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자, 시인의 수박은 점점 크기를 키워 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둥근 수박은 둥근 지구의 수준까지 커져 버렸다. 시인은 사실 지구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수박은 파먹고 껍질을 버릴 수 있지만, 지구는 파먹고 껍질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구를 수박 파먹듯이 열심히 파먹는다. 수박에 칼을 대기 전, 지구에 칼을 대기 전, 이제는 멈칫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