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구성보다 아이디어 강조 빅데이터 분석 통해 인공지능 미술품 나올 수도 있지만 인간의 예술작품엔 감성적 호소 담겨… AI가 넘보기 힘들 것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이것은 필자가 미술이론 수업에서 현대미술을 설명하기 위해 드는 예 중 하나이다. 그림이란 색으로 선을 그려서 면을 이루고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그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색 면 회화 얘기다. 어떤 형태와 인물과 사건을 나타냈는지보다 색 면들 자체를 보자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도 긴장감 변화 감동 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의 아이가 비슷한 작품을 그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루이스가 그 아이 옆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빨간색을 칠해라, 그다음은 초록색, 폭은 점점 좁아지게 등 여러 가지를 지시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아이디어나 개념이지, 구성이 단순한가, 복잡한가 같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널드 저드라는 조각가가 있다. 이 사람은 똑같은 크기의 육면체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벽 위에 붙여 놓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루이스의 그림보다 더 단순해 보이는데, 의도적으로 내용과 구성의 흔적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미니멀 아트라고 한다. 단순한 육면체들의 구성이지만, 조각의 기본은 형태이고 관객이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작품 안에서 여러 가지 형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드는 자기 작품을 팔고 본인이 가서 직접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설치 방법 등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이 대신 설치하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공이 미학인 필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싶다. 해서 바둑과 미술이 다른 점을 짚어 보면서 몇 가지 근거도 떠올려 보았다. 바둑은 한 사람을 상대로 승부를 가리지만, 미술 작품은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한다. 또 승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미술 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은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와 느낌이라는 선택지 중에서 각자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미술가에게도 미술은 하나의 해답으로 답안지를 맞추듯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감동과 울림을 주기 위해서 논리적 판단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호소력에도 의존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차이점은 미술이 가치의 영역이며, 미술 작품에선 독창성이나 창의력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빅데이터의 분석과 종합을 통해 결정을 한다지만 그 결정이 지향하는 가치의 기획이나 창조와는 거리가 멀다. 인공지능 ‘아트’가 만든 작품은 루이스나 저드의 작품과 비슷한 것이거나 그 둘을 적당히 섞어 놓은 것일 수는 있지만,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루이스나 저드의 작품이 아무리 단순해 보이고 성의 없어 보여도 그 사람만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는 점과 차이가 있다. 미술의 힘은 이렇듯 새롭고 독창적인 느낌과 생각에 있고, 그것을 채우는 일은 미술가의 상상력과 가치 창조에서 나온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새로운 감동이나 울림 없이 데이터를 분석·종합한 것 같은 작품들도 주변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