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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일호]AI가 그린 그림도 예술일까

입력 | 2017-08-05 03:00:00

현대미술, 구성보다 아이디어 강조
빅데이터 분석 통해 인공지능 미술품 나올 수도 있지만
인간의 예술작품엔 감성적 호소 담겨… AI가 넘보기 힘들 것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전시장에 걸린 빨강 노랑 초록 등의 색 띠로 된 모리스 루이스의 그림을 보고 한 관객이 뛰쳐나가 평론가에게 달려갔다. “큰일 났습니다. 미술이 이렇게 단순해지면 결국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요? 루이스의 그림은 우리 아이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되어버렸어요.” 이 말을 듣고 평론가가 묻고, 관객이 답한다. “모두 같은 색입니까?” “아니요.” “그러면 색 띠들의 폭이 똑같습니까?” “아니요.” “색들이 꺾인 각도는요?” “서로 다른 것 같아요.” 이 대답이 끝나자 평론가가 “제가 생각하기엔 그 그림은 너무 복잡한데요. 어린아이도 그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도 성의 없지도 않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필자가 미술이론 수업에서 현대미술을 설명하기 위해 드는 예 중 하나이다. 그림이란 색으로 선을 그려서 면을 이루고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그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색 면 회화 얘기다. 어떤 형태와 인물과 사건을 나타냈는지보다 색 면들 자체를 보자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도 긴장감 변화 감동 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의 아이가 비슷한 작품을 그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루이스가 그 아이 옆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빨간색을 칠해라, 그다음은 초록색, 폭은 점점 좁아지게 등 여러 가지를 지시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아이디어나 개념이지, 구성이 단순한가, 복잡한가 같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널드 저드라는 조각가가 있다. 이 사람은 똑같은 크기의 육면체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벽 위에 붙여 놓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루이스의 그림보다 더 단순해 보이는데, 의도적으로 내용과 구성의 흔적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미니멀 아트라고 한다. 단순한 육면체들의 구성이지만, 조각의 기본은 형태이고 관객이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작품 안에서 여러 가지 형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드는 자기 작품을 팔고 본인이 가서 직접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설치 방법 등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이 대신 설치하도록 하기도 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산업과 사회 전반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이 여기저기서 화제다.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인간으로부터 많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위협적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종합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고도의 두뇌 능력과 판단을 요하는 바둑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5번 싸워서 4승을 거두었고, 중국의 커제(柯潔)를 상대로 내리 3번을 이겼다. 이런 추세라면 가상의 인공지능 ‘아트’가 미술가를 대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이디어가 중시되는 현대미술의 단순한 작업이라면 인공지능 ‘아트’가 더 잘해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양식과 작품들에 관한 데이터를 모아 놓고, 분석·종합한 미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공이 미학인 필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싶다. 해서 바둑과 미술이 다른 점을 짚어 보면서 몇 가지 근거도 떠올려 보았다. 바둑은 한 사람을 상대로 승부를 가리지만, 미술 작품은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한다. 또 승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미술 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은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와 느낌이라는 선택지 중에서 각자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미술가에게도 미술은 하나의 해답으로 답안지를 맞추듯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감동과 울림을 주기 위해서 논리적 판단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호소력에도 의존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차이점은 미술이 가치의 영역이며, 미술 작품에선 독창성이나 창의력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빅데이터의 분석과 종합을 통해 결정을 한다지만 그 결정이 지향하는 가치의 기획이나 창조와는 거리가 멀다. 인공지능 ‘아트’가 만든 작품은 루이스나 저드의 작품과 비슷한 것이거나 그 둘을 적당히 섞어 놓은 것일 수는 있지만,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루이스나 저드의 작품이 아무리 단순해 보이고 성의 없어 보여도 그 사람만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는 점과 차이가 있다. 미술의 힘은 이렇듯 새롭고 독창적인 느낌과 생각에 있고, 그것을 채우는 일은 미술가의 상상력과 가치 창조에서 나온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새로운 감동이나 울림 없이 데이터를 분석·종합한 것 같은 작품들도 주변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