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농부 100만 시대 열자]<4> 전남 장성 귀농 4부자
《 전남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에서 미니토마토와 애호박 농사를 짓는 이용헌 씨(72)는 37년 전 도시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이 씨는 귀농 이듬해부터 36년간 매일 영농일지를 쓰고 있다. 날씨와 시세차익 등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어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농촌에서 희망을 보고 미래 먹거리 산업의 전망을 밝게 본 이 씨의 권유로 10여 년 전부터 세 아들이 차례차례 귀농해 아버지 곁에서 화훼와 채소 농사를 짓고 있다. 아들들은 귀농인의 정착을 돕는 선도 농부로 꼽히고 있다. 4부자가 써가는 행복한 전원일기의 현장을 가봤다. 》
3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서 이용헌 씨(위쪽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막내아들 준흥 씨(왼쪽)의 화훼농장에서 둘째 덕재 씨(왼쪽에서 세 번째), 셋째 혁재 씨와 함께 수확한 저온성 화훼 알스트로에메리아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버지 용헌 씨가 36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는 영농일지(아래쪽 사진)는 아들들의 농촌 정착과 성공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덕재 씨는 예비 귀농인이다. 10년 넘게 일하던 경남 거제 조선소가 불황으로 문을 닫자 가족은 처가에 맡겨두고 5월부터 아버지한테 농사일을 배우고 있다. 3개월 사이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질 정도로 고된 생활이지만 덕재 씨는 어느 때보다 땀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전남 보성이 고향인 용헌 씨가 장성에 정착한 것은 1980년. 광주에서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 하우스 농사를 짓는 사촌처남을 따라 장성에 터를 잡았다. 농약을 많이 치는 하우스 농사를 하다 보니 그에 따른 잔병치레가 그칠 줄 몰랐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유기농법에 눈을 떴다. 국내 야산과 들판에 서식하는 곰팡이류, 유산균, 효모균 등을 쌀겨, 음식물 찌꺼기와 섞어 만든 토양 미생물 발효제를 쓰는 것이었다. 이 발효제를 써서 오이, 토마토, 딸기, 상추 등을 재배했다. 상추는 일반농법으로 지은 것보다 신선도는 3배 이상 좋았고 가격은 2배 이상 높게 팔았다. 지금은 인력이 부족해 상추 재배를 접었지만 그때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됐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됐다.
용헌 씨가 농사를 지으면서 보물처럼 아끼는 것이 있다. 36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는 영농일지다. A4용지 크기의 종이 365장을 엮어 3년 치 영농일지로 사용한다. ‘2015년 8월 2일·맑음·24∼35도·호박순 정리·인부 1명, 2016년 8월 2일·맑음·24∼33도·호박 모종판 포트 담기, 2017년 8월 2일·맑음·23∼33도·6∼3동(비닐하우스) 고르기 함·오전에 논두렁 예초기 함.’ 이처럼 영농일지 한 장에는 3년간 같은 날의 날씨와 온도, 작업 내용, 인부 현황 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영농비 지출과 농작물 출하 내용도 빠짐없이 적는다.
용헌 씨는 “영농일지를 보면서 작업 시기와 관리법 등에 대해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날씨와 시세 흐름을 예측해 대비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04년 귀농해 저온성 화훼인 알스트로에메리아를 재배하는 막내아들 준흥 씨(39)는 아버지를 본받아 12년째 영농일지를 쓰고 있다. 꼼꼼한 아버지를 닮은 데다 혼자서 재배 기술을 마스터할 정도의 베테랑 농사꾼이 다 됐다.
인테리어업을 하다 귀농한 셋째 아들 혁재 씨(43)도 성공한 귀농인으로 꼽힌다. 무농약 상추와 깻잎, 치커리 등을 재배해 광주의 프랜차이즈 불고기 전문점에 전량 납품하고 있다. 혁재 씨는 자신의 시설하우스를 교육장으로도 활용해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파종부터 수확까지의 과정과 계절별 식재 품종을 교육하고 있다. 그는 “형제들과 힘을 모아 농촌 체험과 유통을 아우르는 영농조합법인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용헌 씨가 세 아들에게 꼭 지키도록 당부하는 3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직함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대외활동이 많아지면 그만큼 농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작물과 친해지라는 것이다. 작물에 ‘잘 커줘서 고맙다’며 말을 걸고 손끝으로 정성껏 쓰다듬어 주면 최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키우라는 것이다. 과잉 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 등의 후유증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36년 영농일지의 체험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교훈이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