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고미석]“헬조선病 편승 세력, 통계 왜곡해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다”

입력 | 2017-08-07 03:00:00

KAIST 경영대 교수 이병태




‘헬조선’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 페이스북 글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부모들 모두 울고 싶은 심정”이란 그의 호소와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이 퍼지면서 그의 페친(페이스북 친구)은 단숨에 개인 한도 5000명을 꽉 채웠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고미석 논설위원

《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57·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이사)는 지난달 16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헬조선병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땅에 헬조선이라 할 때, 이 땅이 살 만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욕할 때 한 번이라도 당신의 조부모와 부모를 바라보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기 바란다.”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란 제목 아래 철없는 청년세대를 걱정하는 부모들의 속내를 대변한 듯한 내용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 그의 삶이 흙수저의 여정이었기에 직설화법으로 채운 글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되뇌는 청춘을 향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스며 있다. ‘사기꾼들이 이 나라 밖에는 어디 천국이 있는 것처럼 거짓을 전파할 때 미리 막지 못한 죄’에 대한 성찰도 있다. 지난달 말 서울 동대문구 KAIST 라운지에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이 교수를 만났다 》
 
―페북 글 논란이 뜨겁다. 거친 반박글도 나오고. 왜 이런 글을 쓰게 됐나.

“페북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위험성을 지적했더니 공격적 댓글로도 성이 안 차서 ‘인간이 똥값 받는 사회 만들어 놓고 너는 금수저…’라는 비난 메시지를 보낸 젊은 친구가 있었다. 난 아주 티피컬한 흙수저인데…. 5분 만에 격정적으로 올린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킬지 몰랐다.”

흙수저 학자, 징징대는 청춘에 맞짱

그의 부모님은 무학에 소작농, 고교 때까지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네 살 위 누나는 학교에서 제일 공부를 잘했지만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취직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중학에 갔지만 힘들다 투정부린 적 없다. 교육 받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특권이었으니까. 386세대 흙수저 청년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KAIST 대학원을 거쳐 미국 텍사스대에서 박사를 땄다. 내내 오르막길이었다. 대학 졸업 후 5년여 회사를 다녔는데 첫해는 크리스마스 단 하루만 쉬었다. 만 30세에 단돈 300만 원을 들고 유학을 떠나 번듯한 대학교수로 일하던 그는 2001년 귀국했다.



“그때 주변에서 열이면 열 ‘다들 못 나가 안달인데 왜 들어왔냐’고 물었다. 외환위기 겪으며 집단우울증에 걸린 게 아닌가 충격 받았다. 2015년부터 ‘헬조선’이 유행어가 됐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에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과 겹쳤다. 정치적 목적으로 여기에 편승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 결론에 맞는 통계 결과를 왜곡에 가깝게 끌어 쓰는 사례가 많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쓰는 헬조선 같은 말이 가져오는 사회적 피해를 우려한다. ‘대한민국은 무조건 나쁜 나라’로 전제하면서 양극화를 내부 모순으로 돌리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언어는 사고의 틀이다. 잘못된 말이 고착되면 그 개념에 맞는 증거만 믿는 확증편견이 심화된다. 인터넷에 나도는 헬조선론을 들여다보면 대개 조작 왜곡 과장된 내용이다. 여기에 휘둘린 젊은 세대의 정신적 건강에 절박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는 악플을 “의사표현의 자유를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이 선플 대 악플이 9 대 1이라면 한국은 1 대 4 정도”라며 우리 사회가 치료를 요하는 ‘분노조절장애’ 혹은 ‘문화적 타락’에 빠진 게 아닌지 우려했다. 최근 일본인 교수가 ‘그의 페북 글을 누군가 번역해 일본서 공유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대 간 정서적 단절로 어른들이 할 말 못하고 죄인처럼 사는 것은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란다.

―헬조선과 통계가 무슨 관계인가.

“통계 의미에 대한 오해가 빈번하다.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라는 통계를 보자. 이를 한국인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시간제 근로자가 많으면 평균 노동시간은 줄어든다.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은 25% 정도가 파트타임이다. 하르츠 개혁으로 실업 대신 일자리 공유를 위한 파트타임을 선택한 결과다. 우리는 8% 이내다. 정규직 전일제 고용을 외치며 근로시간을 줄이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우리 사회에 대기업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국민과 정부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한국은 300인 이상 직장의 고용비중이 12.4%, 30인 이하 직장에 60%가 고용돼 있다. 미국 영국 독일은 500인 이상 직장에 50% 이상 고용돼 있다. 대기업 고용비중이 적으니 고용은 불안하고 급여는 낮다.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유통업체 휴무’ 등은 대기업 고용을 줄이라는 정책이다.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그리고 대기업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해야 고용안정 복지안정도 가능하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는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리려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전체 일자리 중 공공 부문 고용이 한국은 7∼8%에 불과한데 노르웨이는 30%라고 비교한다. 인구 500만 명에 북해 유전을 깔고 있는 나라와 비교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는 실제 공무원이 적은 게 아니라 공공 부문 분류체계가 달라 나온 결과다. 일본은 5% 정도인데 그럼 왜 늘리지 않겠나. 다 감안하면 우리는 OECD 평균치에 근접한다.”

그는 국제평가의 주관적 인식조사에서 한국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이란 점도 지적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객관적으로 20위권이라면 주관적 평가는 바닥권. 자기 비하가 중증이란 분석이다. “내 연배의 대학 진학률은 19%였다. 성차별이 심했으니 그때 일자리 경쟁에 참여한 대졸자는 10% 정도, 만약 지금도 10%대만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라면 일자리 문제는 없을 것이다. “

과연 한국은 끔찍한 지옥인가. 물론 천국은 아니지만 기대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는 “미국의 청년 중위권 소득이 2만 달러 정도라고 말하면 한국인들은 깜짝 놀란다”며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양극화를 마치 우리만 유독 심한 것처럼 분노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진보는 재벌 탓, 보수는 노조 탓

―페북 글 발단이 된 최저임금, 왜 위험한가.

“최저임금은 빈곤 완화에 효율적 수단이 아니다. 최저임금 받으면 빈곤층이란 등식도 성립되지 않는다. 중산층 집안 대학생이 알바 하면 빈곤계층인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하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 중 30%만 빈곤가구에 속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대기업은 해외 진출과 자동화를 고민하고 중소기업은 고용을 축소하는 등 부정적 효과가 나타난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 암시장도 늘어난다. 경제 주체는 다 자기 살길을 찾기 마련이다. 영국은 나이별로 최저임금이 다르다. 다른 나라는 2, 3년 전 인상을 예고하는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기업이 대비할 시간도 준다. 심사숙고가 필요한데 먼저 저질러 놓고 보겠다는 심산 아닌가. 한쪽에 혜택을 주면 다른 쪽은 무너지게 돼 있다.”

그런 무모한 정책으로 박근혜 정부의 좌초한 노동개혁을 예로 들었다. “일본은 정년 1년 늘리기 위해 20년 논의를 거쳤는데 2015년 다른 개혁은 무산되고 정년 연장만 덜컥 도입했다. 나갈 사람이 남아 있는데 임금피크제로 월급 좀 깎는다고 기업들이 생산성 낮은 청년들을 고용하겠는가.”

재난적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제보다 양극화를 부각시키는 한국 사회. 사실을 보려는 노력보다 진보주의자는 ‘재벌’, 보수는 ‘강성노조’로 이미 적을 정해 놓은 탓이란다. 그는 “강성노조 없는 독일 일본은 왜 양극화를 걱정하고, 대기업 없는 대만은 왜 우리보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우려하는가”라고 되묻는다. 양극화의 많은 문제는 중국 인도 등이 세계경제에 편입되면서 생긴 글로벌 현상이자 세계적 흐름이란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이 교수의 얘기를 중간에 끊기란 쉽지 않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진단해야 답이 나오는데 우리는 내부의 적으로 돌리는 데 급급하다”며 새 정부의 J노믹스로 화제를 돌렸다.

“가장 큰 문제는 내부지향적, 과거지향적이란 거다. 지리적으로 글로벌 시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시간적으로는 너무 과거에 얽매여 있다. 2018년 기획재정부가 공유경제 종합계획을 작성하는 것이 국정과제라는데 우버, 에어비앤비가 나온 때가 2008년이다. 시대 흐름에 뒤진 데다 굳이 정부가 나설 분야도 아니다. 상법 개정안의 의결권 제한도 그렇다.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지분 10%대로 의사결정권은 70∼80%를 갖는다. 이는 황제경영 아닌가? 그런데 왜 허용했을까. 급변하는 시대에 맞게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다. 주주에 대한 시각은 과거와 달라졌다. 해외의 먹튀 투기자본, 적대적 인수를 위한 경쟁 기업도 주식을 사들이는데 경영권 방어만 신경 쓰다간 기업 망한다.”

‘일자리 보호’ 말고 ‘창조적 파괴’를

복지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 분배구조 개선을 내세워 재정지출을 늘리는 데 급급한 정부를 보면서 걱정스럽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업과 자본시장을 보는 시각이 1970년대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브라질 저널리스트가 올린 유튜브 동영상 ‘어떻게 사회주의가 우리나라를 망쳤나’를 봤냐고 묻더니 “룰라 전 대통령(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2003∼2010년)의 정책과 지금 정부의 정책이 싱크로율이 높다”며 한숨을 내쉰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매킨지는 일자리 보호가 정부 정책의 ‘일자리 신앙’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의 창조적 파괴가 중요한 시점이다. 과거에 잘나갔던 가발공장을 보호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가난할 거다. 자동차 반도체 공장이 생겨나 국가경제가 발전하고 급여 좋은 일자리도 생겨난 것 아닌가.”

‘불행하게 평등한 사회’와 ‘더불어 잘사는 사회’. 우리 목표는 어느 쪽인가. 스스로를 비하하고 내부 공격에 집착하는 공동체. 번듯한 일자리를 원하면서 반(反)기업 정서에 지배된 청년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고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서 어떻게 다르게 했으면 지금의 헬조선보다 더 좋은 조선을 만들 수 있었는지 대안을 내어 놓고 반성하라고 하시라.’ 흙수저론에 동원된 통계의 편향성을 파헤치는 책을 준비 중인 경제학자. 이제 그는 헬조선병(病)과의 정면 승부를 벼르고 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