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학문에 뜻이 있지만 서책이 없어 독서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궁핍한 이는 책값이 없어 책을 사지 못하고, 값을 마련할 수 있다 해도 ‘대학’이나 ‘중용’ 같은 책은 상면포 3∼4필은 주어야 합니다.” ‘중종실록’에 실린 어득강(1470∼1550)의 말이다. 상면포 3∼4필은 쌀 21∼28말 가격에 해당했다. 논 한 마지기에서 나오는 쌀이 10말 정도였으니 대단히 비싼 가격이다(강명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값이 싼 근대적 대중 출판물의 효시는 1909년 육당 최남선의 신문관에서 펴낸 십전총서(十錢叢書)였다. ‘가장 적은 돈과 힘으로 가장 요긴한 지식과 고상한 취미와 강건한 교훈을 얻으려 하는 소년 제자(諸子)의 욕망을 만족하게 하려 한다’는 발간사에서, 권당 가격 10전의 취지를 알 수 있다. 십전총서는 두 권으로 끝났지만 1913년부터 신문관은 더욱 저렴한 육전소설(六錢小說) 시리즈를 펴냈다.
‘낡은 외투를 그냥 입고 새 책을 사라.’ 19세기 미국의 목사이자 교육가 오스틴 펠프스의 말이다. 외투 값과 책값을 비교한 셈이지만 이제는 영화 관람료와 비교해야 할 것 같다. 요즘 영화 관람료는 차등요금제에 따라 1만 원 넘는 경우가 많고 아이맥스 3D 상영관은 2만 원을 내야 할 때도 있다. 영화 관람료가 시집 한 권 값 8000원을 훌쩍 뛰어넘었고 소설 책값보다 비쌀 때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값이 비싸졌다 말한다. 정말일까?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