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433억 원 상당의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는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특검은 공판 중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특검이 제시한 안종범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수첩에 대해 재판부는 “수첩 내용만으로는 독대 때 이뤄진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대화를 알 수 없다”며 직접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공판 과정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60권이 넘는 안 전 수석의 수첩 어디에도 ‘정유라’라는 말도, ‘경영권 승계’라는 말도 없었다. 청와대의 이른바 ‘캐비닛 문건’에 대해서는 작성자인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언론의 관심사항을 정리한 것이지 삼성 승계를 도우라고 해서 작성한 것은 아니다”고 증언했다. 삼성 측은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은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이 아니라 최 씨의 강요 내지 공갈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앞서 특검이 경영권 승계작업의 핵심이라고 지목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을 움직였다는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문 전 장관의 개입 사실이 인정된다 해도 당시 합병을 지지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던 만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대가 관계가 전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 부회장은 어제 최후 진술에서 “제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 하더라도 서민들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욕심을 냈겠냐”며 “그 부분이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최초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영장전담판사는 격렬한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도 비슷한 인신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 측 변호인은 특검이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했다. 범죄 사실의 인정은 여론이 아니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이제 법정에서라도 냉철한 법리에 따른 판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