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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성철]산으로 간 ‘탈검찰화’

입력 | 2017-08-08 03:00:00


전성철 사회부 차장

법무부 ‘탈(脫)검찰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 출마할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장차관을 비롯해 실·국장, 본부장 등 법무부 고위직을 검사 출신이 독식하면서 법무부와 검찰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여 온 상황을 깨뜨려야 검찰을 바꿀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무부 ‘탈검찰화’는 검찰과 청와대의 유착을 끊을 근본적 처방이라는 점에서 검찰 안팎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법무부 ‘탈검찰화’는 산으로 가는 모양새다.

법무부의 실·국장 및 본부장 자리는 모두 7개다. 이 중 교정직 공무원이 맡아온 교정본부장을 제외한 여섯 자리는 그동안 검사들 몫이었다. ‘검찰 식민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근 법무부는 ‘직제 시행규칙’을 개정해 검찰국장을 제외한 모든 실·국장, 본부장 보직에 비(非)검사 출신 일반직 공무원이 임용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하지만 막상 인사판이 열리고 보니 결과는 엉뚱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단행한 인사에서 기획조정실장과 범죄정책예방국장에 또다시 검사장급 검찰 고위 간부를 앉혔다. 앞서 5월 말 먼저 부임한 검찰국장까지 포함하면 법무부 고위직의 절반 가까이를 검사 출신으로 채운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무부 안팎에서는 “‘탈검찰화’의 진짜 목적은 염불이 아니라 잿밥”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아직 인사 발표가 안 난 법무부 고위직 세 자리 중 비검찰, 비법무부 출신 기용이 가장 유력한 자리는 법무실장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다. 두 자리는 공교롭게도 변호사 업계가 법무부 내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보직이다.

법무실은 민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법무부 내에서 가장 큰 부서다. 각종 법률은 입법 및 개정 과정에서 법무부 법무실의 검토를 거친다. 법안 문구나 표현 하나에 많게는 수천억, 수조 원이 오가기 때문에 경제계는 법무실의 움직임에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입법로비를 ‘블루오션’으로 여기는 대형 로펌이 법무실 근무 경력이 있는 검사 출신을 영입 리스트 우선순위에 올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도 변호사들이 탐내는 보직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비자 문제를 비롯한 각종 민원 업무 결정권을 쥔 자리여서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출신 변호사가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을 떠들썩하게 만든 ‘엘시티’ 사건에서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구설에 올랐다. 엘시티 호텔 사업 부지를 ‘외국인 부동산투자이민제도’ 대상 지역으로 선정한 것이 특혜라는 것이다. 외국인 부동산투자이민제도는 법무부가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일정 금액 이상을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영주권 등을 주는 제도다. 이 제도의 투자 대상 지역이 되면 그만큼 외국인 투자를 받기 쉬워진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법무부의 누군가가 엘시티 사업을 배후에서 도왔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처럼 이권과 관련된 자리만 선별적으로 ‘탈검찰화’하는 건 오해를 살 수밖에 없다. 검찰에서는 벌써 “무엇을 위한 ‘탈검찰화’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이 이른바 ‘영양가 있는’ 자리는 다 빼앗아 가고, 기조실장과 범정국장처럼 권한은 작은데 법무부 안팎에 부탁할 일이 많은 보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래서는 법무부 ‘탈검찰화’의 최종 목표인 검찰 개혁의 순수성까지 의심받는다. 늘 인사는 만사(萬事)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