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행사장은 매표소부터 학생과 학부모로 인산인해였다. 마지막 날이었는데도 1000원을 내고 입장권을 사는 데 긴 줄을 서야 했다. 행사장 안에 들어서자 더욱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은행에서나 볼 법한 순번 대기표가 대학별 부스 곳곳에 설치돼 ‘딩동딩동’ 소리를 내며 대기표를 발권해주고 있었다. 영화관의 무인발권기 같은 대형 터치스크린 기계를 들여놓고 대기 순번을 예약해주는 대학들도 있었다. 서울 지역 인기 대학에 수험생 상담이 워낙 몰리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었다.
시험 삼아 중앙대 부스에서 상담 대기표를 뽑았더니 276번째 대기라고 나왔다. 몇 시쯤 상담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안내원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순서가 돌아오기 전에 행사가 종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학은 10개 이상의 상담 창구를 만들어 운용하는데도 상담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대학이 이런 성황을 누린 건 아니다. 행사장을 돌면 돌수록 남의 집 잔치에 온 듯한 처지의 대학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막대사탕과 부채를 나눠 주고, 볼펜에 포스트잇까지 학교 로고가 새겨진 각종 기념품을 뿌리며 ‘호객’을 하고 있었지만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손님’이 없다 보니 상담을 위해 행사장에 나온 입학 관계자들은 애꿎은 스마트폰만 보거나 하품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대학은 행사 종료까지 몇 시간 남았는데도 일찌감치 부스에서 철수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매년 급감하는 상황에서 이들 대학의 10년, 20년 후가 걱정됐다.
사실 지금은 아무리 인기가 없고 경쟁력이 없는 대학이라 해도 어떻게든 연명이 되는 구조다. 지난해 국내 4년제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을 보면 249개 대학 가운데 오직 31개만 신입생을 못 채웠고 218개 대학은 90% 이상 신입생을 충원했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대학 진학을 필수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일단 가고 보자’는 수험생이 많았던 덕분이다.
하지만 앞으론 다르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40만 명 안팎이다. 지금 50, 60대가 태어났을 때의 딱 절반이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 중 절반만 여자고, 이들이 성인이 돼서 무조건 1명씩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20, 30년 뒤의 출생인구는 많아야 한 해 20만 명에 불과하다. 세대가 흐를수록 한국의 인구는 급감할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지금 있는 대학 중 여럿은 굳이 정부가 ‘칼’을 대지 않아도 스스로 죽어나갈 것이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수도권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지금도 수시 합격자 발표 철이면 교수들이 합격생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다른 대학에 합격했어도 우리 대학에 꼭 등록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고 말했다. 올해 수능 응시 인원은 사상 처음으로 60만 명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돌이킬 수 없는 이 골치 아픈 미래가 우리 대학들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