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부동산대책 발표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줄어 고민하던 김모 씨(45)에게 주거래은행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직원은 “원래는 안 되는 건데, 돈이 급하다고 하시니까 제가 신용대출 한도를 한 번 알아봐 드릴게요”라며 김 씨에게 귀띔했다.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매매가 8억 원)를 구입하려는 김 씨는 기존엔 주택담보대출로 4억8000만 원까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전세금과 여유 자금을 더하면 취득·등록세와 부동산 중개수수료까지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투기지역인 이 아파트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60%에서 40%로 낮아지며 대출 한도가 3억2000만 원으로 줄었다. 그는 은행 직원의 ‘안내’에 따라 9000만 원을 신용대출로 마련해 아파트 구입에 보태기로 했다.
7일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규칙에 따르면 주택 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을 때 LTV로 인해 대출 한도가 모자라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는 건 금지된다. 하지만 실제 일선 창구에서는 ‘생활비 대출’ 등을 명목으로 기존의 법규를 우회한 편법 신용대출이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편법 신용대출에는 여러 방법이 쓰인다. 우선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두세 달 전에 신용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이 나가는 앞뒤 한 달가량은 같은 고객에게 신용대출을 내주지 않는다.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 관계자는 “이사로 목돈을 써야 해 부족한 생활비를 채워야 한다거나 인테리어 비용이 필요하다고 하면 사실 은행이 신용대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며 “금융당국 역시 고객이 미리 받아 둔 신용대출이 실제 어디에 쓰이는지 일일이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각각 다른 은행에서 받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신용대출로 대출 수요가 몰리며 A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대책이 발표된 뒤 하루 만에 110억 원 가까이 늘었다.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 창구에도 신용대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금융당국은 8·2부동산대책 발효일인 3일 이전에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 매매를 계약한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출 가이드라인을 7일 공개했다. 대책 발표 이전에 △주택 매매 계약을 체결했거나 △분양 당첨돼 계약금을 납부했거나 △분양권 또는 입주권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아직 은행에 대출 신청을 하지 못한 차주는 실수요자로 인정돼 강화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결국 부동산 매매계약을 하고 대출을 받지 못했더라도 무주택자라면 기존대로 60%의 LTV를 적용받아 돈을 빌릴 수 있다.
송충현 balgun@donga.com·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