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홀로 나는 작은 새이지만 반년 뒤엔 큰 날개로…”

입력 | 2017-08-09 03:00:00

여자스키점프 유일한 대표 박규림




슬로베니아 플라니차에서 전지훈련 중인 국내 유일의 여자 스키점프 선수 박규림(오른쪽)과 강칠구 코치. 강칠구 코치 제공

박규림(18·상지대관령고)은 국내에 한 명뿐인 스키점프 여자 국가대표다. 박규림에게 그 무거운 바통을 넘겨준 건 스키점프 1세대로 꼽히는 강칠구 스키점프 대표팀 코치(33)다.

박규림은 강 코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중학교 1학년 때 스키점프에 입문했다. 막연한 동경심에 새로운 길에 뛰어든 박규림은 어느새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스키점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속 그 인물이 이젠 박규림과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는 대표팀 지도자로 인연을 맺었다.

최근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키점프가 열리는 강원 평창 알펜시아에서 만난 강 코치는 박규림을 ‘내유외강형’이라고 소개했다. 언뜻 보기에 박규림은 아직 앳된 얼굴에 수줍음이 묻어나는 모습. 하지만 강 코치는 “(박규림이) 점프하다 잘 안 되면 ‘악’ 소리를 내요”라며 “승부욕이 강한데 생각대로 안 되면 아쉬워서 그런 소리를 내는 거죠”라고 말했다. 악바리 근성이 강하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박규림은 강 코치의 지도 아래 막바지 국내 체력 훈련과 밸런스, 활강 자세 교정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 스키점프의 역사를 시작한 강 코치는 지난해 5월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로 변신해 박규림 전담 코치가 됐다. 강 코치는 자신의 선수 경험을 살려 박규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규림이 성적이 기대보단 잘 나오지 않았는데 돌이켜 보면 대표팀에서 홀로 훈련하는 시간이 많아서였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제가 옆에서 잘 지도해야죠.”

슬로베니아 플라니차에서 전지훈련 중인 국내 유일의 여자 스키점프 선수 박규림(오른쪽)과 강칠구 코치. 강칠구 코치 제공

박규림은 2월 열린 2016∼2017 국제스키연맹(FIS) 스키점프 월드컵에서 여자 노멀힐에 출전해 총점 67.1점으로 30등에 올라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아직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는 실력이지만, 한국 여자 스키점프의 첫걸음을 박규림이 내디딘 것이다.

박규림에게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소감을 묻자 “떨린다기보다는 기대된다”고 답했다. 그동안 여자 홀로 대표팀에서 생활하며 숱한 고행길을 묵묵히 이겨내 왔다. 그렇게 고생한 만큼 무럭무럭 성장해 왔을 자신의 실력을 이번 대회에서 한번 가늠해 보고 싶은 것이다.

한편으론 갑자기 주변의 관심이 쏠리다 보니 중압감이 크다. “아직 모자란 게 많은데 저에게 기대하는 분이 많아지다 보니 조금 걱정되긴 해요.” 그러면서도 그는 “국가대표니까…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코치는 성장해 가는 박규림을 “차분히 기다려 달라”고 당부한다. 당장은 올림픽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둔다면 다른 여자 꿈나무 선수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강 코치는 “늘 머릿속에 ‘스키점프의 대가 끊기면 안 된다’라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낀다”며 “박규림은 그런 부분에서 한국 스키점프에 정말 중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은 다음 달 21일까지 두 달 가까이 유럽에서 열리는 각종 스키점프 대회에 출전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비한 실전 감각을 익힐 계획이다. 강 코치는 “국가대표란 결국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규림이가 힘들 텐데도 항상 열심히 해서 기특하다. 재능이 있으니까 성급히 성적을 내겠다는 생각보단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평창=김재형 monami@donga.com·임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