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일 산업부 기자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부는 혁신의 바람을 좇다 보면 ‘공유(Share)’라는 단어와 만나게 된다. 디자인, 연료소비효율, 가격을 따져 차를 사는 시대가 저물고 필요할 때만 차를 빌려 쓰는 시대가 올 것이란 이야기가 많다. GM(메이븐), 다임러(카투고), BMW(드라이브 나우) 등 내로라하는 제조사들이 앞다퉈 카셰어링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이 바람을 거스를 수 없어서다.
늦게나마 현대차도 9월 현대캐피탈과 카셰어링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름은 ‘딜카’. 4월 서비스 시작 예정이었지만 기존 서비스들과 차별화 방법 등을 고민하다 5개월이 더 늦어졌다. 차별화로 내세운 것은 고객이 원하는 장소까지 차량을 갖다 준다는 것인데 이미 카셰어링 업계 1위 쏘카가 6월 시작한 서비스다.
실제 쏘카는 아직 돈을 못 벌고 있다. 지난해 서울과 제주를 중심으로 차량 6400여 대를 운영해 212억 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보면 낙제점이다. 그러나 수익만 생각했다면 자동차 한번 안 만들어본 SK그룹 사업형 지주회사 SK㈜가 740억 원을 투자해 쏘카 지분 22%를 확보했을 리 없다. 베인캐피털(240억 원), 프리미어파트너스(100억 원)의 투자도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 빅3 완성차 업체 중 한 곳인 GM은 ‘메이븐(Maven)’이란 브랜드로 카셰어링 시장에 한발 앞서 진출했다. GM은 젊은층이 몇십 달러만으로도 GM 자동차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메이븐을 활용한다. 신차 위주로 차량을 배치해 초기 시장 반응을 살핀다. 소상공인 전용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시장을 세분화해 이용 행태를 분석한다. 궁극적으로 메이븐이 아닌 GM을 위한 사업이다.
국내 카셰어링 이용자들 역시 미래 현대차 고객이 될 수 있는 20, 30대가 대부분이다. 쏘카와 그린카 등은 매일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차량을 선호하는지 살핀다. 당장 돈을 벌지는 못해도 수백만 명을 가입자로 둔 거대한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이 모아온 데이터는 영업이익이란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가치가 있다.
그동안 자동차 산업의 주인공은 ‘제조사’였지만 미래는 모른다. 자동차가 공짜로 도심 곳곳에 배치되고, 이용자는 모바일로 차량을 예약해 이용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현대차가 아무리 자동차를 잘 만들어도 돈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벌어가는 현실이 오지 말란 법은 없다. ‘양복 대신 티셔츠’를 입고 신차 발표회를 했던 것처럼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현대차가 보고 싶다. 잘하는 일만 고집하다가는 금세 무대 뒤로 밀리기 십상인 요즘이다.
서동일 산업부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