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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몽마르트르’ 양림동, 문화-역사관광지로 뜬다

입력 | 2017-08-10 03:00:00

1904년부터 美 선교사 뿌리 내려… 의료-교육활동으로 근대 문물 전파
254억원 들여 근대역사문화마을 조성, 재활용 소재의 정크아트 단지도 인기




광주의 몽마르트르라는 애칭이 붙은 양림동에는 펭귄마을(위 사진) 등 현대 문화자산과 우일선 선교사 사택(아래 사진) 등 1900년대 초반 근대 문화유산이 다양하다. 광주 남구 제공

광주 남구 양림동은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옛 전남도청 자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옛 도심을 따라 10분가량 걷다 보면 닿는다. 면적은 68만 m²나 되지만 주민은 8017명에 불과하다. 그래도 ‘광주의 몽마르트르’로 불린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가 기독교 순교자의 언덕에서 유래된 것처럼 양림동에는 1904년부터 외국 선교사가 정착해 의료와 교육의 씨앗을 뿌렸다. 이후 예술과 민족운동이 활성화돼 예향(藝鄕)과 의향(義鄕)의 토대가 됐다. 이제 양림동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문화·역사관광지로 뜨고 있다.



○ 근대 문화자산 ‘산더미’

미국인 선교사 오웬이 1904년 양림동에 정착해 교회와 학교를 세운 이래 선교사들이 이곳에서 선교를 중심으로 의료와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양림동에는 오웬기념각(閣), 유수만 우일선 선교사 사택, 유진벨 선교기념관 및 선교기념비 등이 남아 있다. 근현대 주택인 최승효 이장우 가옥을 비롯해 호랑가시나무 군락지, 시인 김현승 시비(詩碑)도 있다.

근대 문물을 상대적으로 일찍 접한 양림동에서는 예술가가 많이 나왔다. 중국에서 국민 음악가로 불리는 정율성(1914∼1976), ‘검은 머리의 차이콥스키’로 평가받는 정추(1923∼2013)가 여기서 자랐다. 시인 김현승(1913∼1975)이 유년기를 보내고 소설가 황석영이 이곳에서 대하소설 ‘장길산’을 썼다.

1919년 3월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농업학교 학생 등 1000여 명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양림동에서 만세 행진을 벌였다. 항일 유적도 곳곳에 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는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피터슨 목사가 계엄군이 헬기에서 기총소사(機銃掃射)를 하는 것을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양림동은 2009년부터 광주시가 254억 원을 들여 근대역사문화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순교자기념공원, 문학소공원, 근대사립학교 의료원 기념관, 이강하 미술관 등이 지어졌다. 내년 초까지 역사문학길, 광주정신문화관 등도 세워진다. 시 관계자는 “문화 인프라가 조성된 양림동에 앞으로는 ‘속살’을 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 ‘킬러 콘텐츠’로 뜬 펭귄마을

양림동에는 펭귄마을이 있다. 양림동사무소 반경 500m 내에 재활용품을 소재로 만든 정크아트(junk art·쓰레기예술)단지다. 김동균 촌장(64)이 2013년 각종 쓰레기를 모아 전시한 것이 시초다. 중장년층이 어릴 때 쓰던 풍금이나 고무신, 작동을 멈춘 태엽시계 등이 예술작품으로 변신했다.

마을 이름을 펭귄이라고 붙인 데는 약간 무례하지만 유쾌한 이유가 있다. 뒤뚱뒤뚱 걷는 어르신들이 많아 이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기초단체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했다는 점은 자랑거리다. 다만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쓰레기통, 그늘막 같은 편의시설은 부족하다.

펭귄마을 주민 5명은 최근 조합을 결성했다. 김민희 ‘양림 펭귄마을조합’ 대표(49·여)는 “펭귄마을에 지난해 20만 명이 찾았고 올해는 방문자 35만 명을 예상한다”며 “이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온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젠트리피케이션(임차료가 올라 기존 업주나 원주민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우려한다. 이모 씨(45)는 “양림동에 관광객이 늘면서 최근 1년간 월세가 서너 배 이상 오른 가게도 있다”며 “지역 주민과 상생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