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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밖 ‘겉돌’해도 뿌듯∼

입력 | 2017-08-14 03:00:00

아이돌 팬들의 새 풍속




보이그룹 워너원의 쇼케이스 콘서트가 열린 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주변에서 팬들이 직접 제작한 굿즈를 주고받고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나눔 합니다!”

보이그룹 ‘워너원’의 데뷔 무대인 ‘프리미어 쇼콘’이 열린 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누군가 외치자 주변 사람들이 한순간 몰려들었다. 박지민 양(15)은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한참을 기다린 뒤 이 그룹 멤버 강다니엘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받았다. 배지를 들고 기뻐하는 그에게 “워너원의 첫 무대가 기대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늘은 표가 없어 ‘겉돌’만 하고 갈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겉돌’이란 “겉을 돌다”를 줄인 말로 콘서트가 열리는 날 공연장 주변을 배회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아이돌 팬덤의 은어다. 표가 금방 매진돼 예매에 실패했거나 돈이 없어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어쩔 수 없이 ‘겉돌’을 한다. 이들은 콘서트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주변을 돌며 굿즈(goods·상품)도 구매하고 사진도 찍는다. 리허설 소리라도 들으려는 ‘귀동냥 겉돌’도 있다.

이날 박 양은 공식 굿즈 판매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 현장에 도착했다. 워너원 멤버의 얼굴이 프린트된 ‘포카(포토카드)’와 응원봉을 샀다. 팬들이 개인적으로 만든 비공식 굿즈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것을 구매해 총 2만 원가량을 썼다. 하지만 박 양이 챙긴 굿즈 중에는 무료로 나눔 받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콘서트는 오후 8시 시작되지만 박 양은 오후 4시에 고척돔을 떠났다. 그는 “비록 멤버들의 모습은 못 봤지만 예쁜 굿즈를 많이 받아 뿌듯하다”고 했다. 다른 팬들의 손에도 슬로건(응원 문구가 적힌 종이) 등이 가득했다.

이들이 콘서트를 볼 수 없음에도 공연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나눔’, 즉 일부 팬들이 무료로 나눠주는 굿즈 때문이다. 지난달 8일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서윤진 양(16)은 “겉돌을 하면서 콘서트 때만 판매되는 한정판 공식 굿즈를 사기도 하지만 팬들이 직접 만든 굿즈 중에 예쁜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이런 나눔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해당 가수의 팬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무료로 굿즈를 받을 수 있다. 공식 팬클럽 가입이나 문자 투표 기록, 음원 사이트에서 해당 가수의 음악을 여러 차례 청취한 기록 등이 인증 수단이 된다. 청취 기록은 음원을 순위권에 올리기 위해 반복적으로 노래를 듣는 ‘스밍(스트리밍)’을 했다는 ‘충성심’의 증거다. 또 무료 굿즈를 중복으로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손등에 도장을 찍기도 했다. 기다리는 줄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열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은 팬도 있었다.

그렇다면 사비를 들여 만든 굿즈를 고생해가며 무료로 나눠주는 이유는 뭘까. 3주 전부터 제작 홍보 등의 준비 과정을 거쳐 이날 ‘이대휘 슬로건’ 500장을 나눠준 임다혜 씨(22·여)는 “같은 가수를 응원한다는 공감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눔 받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간식을 받거나 ‘덕분에 우리 가수의 인기가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며 “그렇게 서로 교류하며 친해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