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12월에는 좌우 이념 차이를 뛰어넘어 정인보, 홍명희, 정지용, 김기림, 조지훈, 임화 등 문인 24명의 시가 실린 ‘해방기념시집’이 나왔다. 홍명희가 수록 시 ‘눈물 섞인 노래’ 첫 부분에서 외친다. ‘독립만세 독립만세 천둥인 듯 산천이 다 울린다. 지동인 듯 땅덩이가 다 흔들린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라도 꿈만 같다. 아이도 뛰며 만세 어른도 뛰며 만세,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 만세.’
문학평론가·소설가 김남천은 1945년 10월 15일부터 이듬해 6월 28일까지 ‘자유신문’에 장편소설 ‘1945년 8·15’를 연재했다. 화가 이인성의 삽화와 함께 연재되다 중단된 이 작품의 배경은 광복 직후 시기다. 연재 예고에 실린 작가의 말이 당시의 혼란상을 증언한다. “남쪽 북쪽이 갈리고 정당이 45개나 생기고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떠들어대고,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머리가 뒤숭숭하다고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출판사 창업을 고민하던 정진숙(1912∼2008·을유문화사 창업주)에게 위당 정인보가 한 권고가 그 시절의 출판 정신을 증언한다. “36년간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 역사 문화 그리고 말과 글을 다시 소생시키는 데 36년이 더 걸릴 것이므로, 우리 문화를 되찾는 일을 하는 출판사업은 애국하는 길이자 민족문화의 밑거름이다.”
광복은 우리말과 글, 문화, 그리고 책의 광복이기도 하였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