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농부 100만 시대 열자]<10> 맛있는 실험 성공한 울산애플팜 이실범 씨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뒤 6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이실범 씨(왼쪽)가 부인 정민숙 씨와 함께 사과나무를 돌보고 있다. 이 씨는 사과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바닷물을 민물과 섞어 나무에 주는 등 다양한 실험으로 성공을 거뒀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 맛있는 사과 위해 다양한 실험
2012년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 씨는 어떻게 하면 사과 맛을 더 좋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미네랄이 풍부한 사과가 맛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물질을 물색해보다 떠오른 게 바로 바닷물이었다.
바닷물은 울산 북구 당사동 바닷가에서 청정 바닷물을 실어와 지하수와 혼합해 뿌려주고 있다. 자주 뿌리지는 않고 1년에 세 차례만 뿌려준다. 바닷물만이 아니다. 칼슘을 섞은 물도 1년에 5, 6차례 뿌려준다. 이 씨는 “미네랄과 칼슘이 풍부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우리 사과만 찾는 애호가들이 많다. 대형마트 매장에서도 많이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애플팜의 사과는 무해(無害) 농약 농산물 인증과 글로벌 농산물 우수관리인증(GAP)을 받았다.
울산이 고향인 이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SK울산공장(당시 유공)에 입사해 윤활유생산실에서 근무했다. 성실한 덕에 동료들에게 신망이 높아 1995년에는 임기 3년의 노조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노사 화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5월에는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 씨는 정년퇴직 10년을 남겨둔 2002년경 ‘인생 2막’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보람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천명(知天命)이라는 50이 되니 남은 일생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여름휴가나 연가(年暇) 때 해외여행을 하면서 둘러본 선진국에서는 노후에 농장을 운영하는 은퇴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해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씨는 고향에 있는 야산을 떠올렸다. 개간하면 훌륭한 사과농장이 될 듯했다. 틈틈이 찾아 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등 ‘사과 선진국’을 다니며 선진 영농기법을 배우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는 노부부가 운영하는 과수원에 몇 달간 머물며 일을 배웠다.
○ 매출 1억 원… 멋진 ‘후반전’
물론 위기가 적지 않았다. 아무리 10년을 준비했다고 해도 실전은 이론과 달랐다. 처음에는 사과 품종 개발에 실패하거나 사과나무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기도 했다. 태풍으로 사과밭이 쑥대밭이 됐을 때는 농사를 포기하고 싶었다. 이 씨와 부인 정민숙 씨(62)는 서로를 격려하며 이겨냈다. 울산 애플팜에서는 연간 사과 약 43t을 생산해 1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면적 3만3000여 m²의 과수원에는 사과나무 200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곳곳에 단감과 살구나무도 자란다. 특이하게 과수원 바닥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 비가 많이 내릴 때 빗물에 흙이 씻겨 내려가는 것을 막고 물을 오랫동안 머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잔디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사과나무의 건강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고 이 씨는 말한다. 사과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면 작업하기가 어렵고 태풍 피해를 입을 수 있어 밀식(密植·빽빽하게 심음)해서 과도하게 자라는 것을 막았다. 자동화설비를 갖춰 물도 자동으로 주고 있다.
부인 정 씨와 사과나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면서 사과를 따거나 나무를 손질할 때 부부의 정은 더욱 도타워진다. 이 씨는 “직장에 다닐 때는 느껴보지 못한 부부애가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새록새록 돋아나는 느낌”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루 일을 마치면 이 씨와 정 씨 부부는 울산 시내로 나가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하며 피로를 풀거나 맛집 탐방을 한다. 이 씨는 “인생 후반전을 농촌에서 보람차고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