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우크라 ‘쌍둥이’ 터보펌프 북한이 지난해 3월 실험 장면을 공개한 신형 미사일 엔진에 달린 터보펌프(왼쪽 사진)는 우크라이나제 RD-250 엔진 터보펌프와 동일하다. 사진 출처 노르베르트 브뤼게 홈페이지
여러 정황은 지금까지 전략물자 및 기술 반입에 집중하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큰 구멍이 있음을 증명한다. 지금까지 미국은 중국을 통한 대북 제재에 힘을 들여왔는데, 그 와중에 옛 소련 국가들로 통하는 뒷문은 활짝 열려 있었음이 드러났다. 북한의 국방공업이 옛 소련 기술에 의존해 발전했음을 감안하지 못한 것도 실책이다.
○ 명백한 사진 증거 공개돼
뉴욕타임스 보도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엔진 유출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 떠넘기며 결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반칙’이 사실상 확인된 상황이다.
15일 우크라이나 우주청 청장대행인 유리 랏첸코는 “RD-250 엔진은 2001년까지 유즈마시 공장에서 러시아 우주로켓 ‘사이클론-2’ ‘사이클론-3’용으로 233개 제조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보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금도 7∼20개 사이클론 로켓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엔진과 설계도를 갖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 로켓이나 엔진이 북한으로 이전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러시아 ‘국가안보사회응용문제연구소’ 알렉산드르 줄린 소장은 “지난해 3월 30일부터 6월 1일 사이에 유즈마시 출신 엔지니어 6∼10명 정도가 북한으로 일하러 갔다”고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개했다. 그는 “몇 년 전에도 12∼16명 정도의 우크라이나 전문가가 북한으로 갔으며 이들의 머릿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군수산업 담당 부총리까지 가세해 “엔진 복제품을 만드는 데 엔진 제작 능력이 있는 우크라이나 전문가가 없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명백한 사진 증거 앞에 두 나라 모두 북한의 신형 엔진이 RD-250이 아니라고 부인하진 않았다.
○ 러시아 뒷문은 활짝 열려
북한이 옛 소련 과학자들에게 의존해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 군수공업 분야 고위직 출신 탈북자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 로켓 엔진, 동체, 연료, 송수신, 탄두 등 각 분야를 다뤘던 러시아 군사과학자 20여 명이 북한으로 넘어와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북한 166(로켓공학)·628(로켓엔진)연구소에 소속된 이들은 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 자리 잡은 최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에게 기술자들을 러시아로 데려가겠다고 말했지만 최고 대우를 받던 기술자들은 모두 북에 남았다”고 말했다. 기술자 빼돌리기에 노하우를 갖춘 북한은 옛 소련 기술자들의 기술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맥을 활용해 필요한 추가 기술자들을 영입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