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대만 타이베이시의 한 상점 안에서 시민들이 매장 내 유일하게 켜진 형광등에 의존해 물건을 사고 있다. 사진 출처 대만중앙통신
이번 사고 원인이 1차적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로의 연료 공급 이상에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원전 가동 중단과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등 성급한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대만전력공사에 따르면 대만은 이달 들어 단 한 차례도 피크타임 기준 설비 예비율이 두 자릿수(10% 이상)를 넘은 적이 없다. 사실상 정전 상태인 1%대 예비율을 기록한 날도 이틀이나 된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대만을 ‘탈원전 모범 사례’로 지목해왔다. 하지만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대정전이 발생하자 한국도 같은 사고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만전력공사에 따르면 대만의 발전 설비용량 기준으로 LNG가 35%를 차지하며 석탄(29%), 원자력(12%), 신재생에너지(4%)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 원전 용량만 21%로 대만보다 클 뿐이고 LNG(35%), 석탄(33%), 신재생에너지(8%)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만과 비슷하다. 대만의 발전 설비용량은 한국의 45% 수준이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업종을 주력으로 삼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아 국내에서 전기를 모두 생산해야 하는 이른바 ‘전력 섬’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원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대만도 하는데 한국도 탈원전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쳐 왔다.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차이 총통은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 중단을 법제화했지만, 올해 들어 전력난에 시달리자 원전 2기를 연이어 가동했다. 하지만 대정전까지 발생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대만을 탈원전 모범 사례가 아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최근 공개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적정 설비 예비율을 6, 7차 때의 22%에서 20∼22%로 낮춰 잡았다. 대만의 목표 예비율(15%)보다도 높지만 이런 식으로 전력 공급량이 계속 줄어들면 대만처럼 작은 사고가 대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종=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