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DB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정말입니다. 달걀 색깔로 ‘아재 테스트’가 됩니다.
“나는 어릴 때 흰 달걀을 먹은 적이 있다. O 또는 X?”
요즘 ‘살충제 달걀’ 때문에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그걸 핑계 삼아 제 주변에 (아주 드물게) 있는 1990년 이후 출생자에게 ‘흰 달걀’에 대해 물었더니 ‘그런 건 외국에나 있는 거 아닌가요?’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더군요.
‘부활절 때 흰 달걀에 그림 그려보지 않았냐’고 물어도 구석기 시대 사람처럼 쳐다보더군요. 요즘에는 파라핀에 담가서 색깔을 낸다고 합니다. (네, 저는 가톨릭 냉담자입니다.)
그래서 자료를 뒤져 보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흰 달걀은 언제 우리 곁에서 사라졌을까?
한국가금학회에서 펴낸 ‘1993 한국의 양계’에 해답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금·家禽은 집에서 기르는 거위, 닭, 오리 같은 날짐승을 뜻하는 낱말입니다.)
1986년에 갈색 달걀을 낳는 닭을 키우는 비율이 이미 60%를 넘어섰으니 아직 나이가 30대 중반 이하이신 분들은 흰 달걀을 잘 보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재들만 ‘흰 달걀 전성시대’에 살았던 셈입니다.
그러면 어떤 닭이 흰 달걀을 낳고, 어떤 닭이 갈색 달걀을 낳을까요? 알 낳는 닭은 크케 레그혼 같은 흰색 품종과 로드 아일랜드 레드, 뉴 햄프셔 같은 갈색 계통 품종으로 나뉩니다. 깃털 색이 그렇다는 뜻이죠. 깃털 색을 결정하는 색소가 달걀 껍데기 색깔도 결정합니다. 그래서 흰 닭은 흰 달걀을 낳고, 갈색 닭은 갈색 달걀을 낳습니다.
그러다 기술 발달에 따라 갈색 닭도 달걀 생산력이 올라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흰 닭은 보통 달걀 생산만 가능하지만 갈색 닭 품종은 달걀과 고기를 모두 얻을 수 있는 난육(卵肉) 겸용 품종이어서 농가에서 갈색 닭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면서 “1980~90년대 달걀 유통업체에서 ‘토종 달걀’, ‘황금달걀’ 마케팅을 벌여 소비자들도 갈색 달걀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03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양계협회, 우송대, 충남대 공동 연구진이 내놓은 논문 ‘난각색에 대한 한국 소비자 기호도 조사’에 따르면 9점 만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인들은 갈색 달걀에 6.27점을 준 반면 가장 흰 달걀에는 4.51점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연령대별로 봐도 20~30세를 제외하면 모두 제일 갈색 달걀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가장 젊은 이 세대는 제일 흰 달걀에 제일 낮은 점수를 준 유일한 집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히 젊은 세대에게 흰 달걀은 낯설다고 봐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물론 갈색 달걀을 선호하는 게 전 세계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독일 소재 육종 회사 로만 티어주흐트에서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 유럽, 동아시아에서는 갈색 달걀을 선호하지만 라틴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중동에서는 흰 것을 선호하죠.
그래도 색깔보다 더더욱 중요한 건 역시 신선도일 터. 다시 흰 달걀을 먹어 보고 싶은 마음 정도는 얼마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갈색 달걀이라도 아무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신다면 아래 추천 버튼을 힘차게 눌러주세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