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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이영미 “내 이야기인 듯 내 이야기 아닌 미의 이야기”

입력 | 2017-08-18 05:45:00

뮤지컬계의 ‘카리스마 여왕’ 이영미가 카바레 뮤지컬 ‘미 온 더 송’으로 돌아온다. 남편인 김태형 연출이 연출과 대본을 맡고, 이영미 자신이 전 넘버를 작곡, 작사한 부부합작 뮤지컬이어서 더욱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진제공 ㅣ 아이엠컬처


영국 에든버러서 본 모노뮤지컬서 영감
공연기간 단 9일…힘들어서 짧고 굵게
한두 번 만에 목 뚫려…아직 안 죽었죠


국내 뮤지컬계의 여배우들 중에는 ‘쎈언니’들이 꽤 있고,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카리스마가 있다’란 소리가 꼬리표처럼 들러붙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몇 안 되는 카리스마 여배우들 중에서도 ‘여왕’으로 추앙되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 바로 이 사람이다. 이영미.

누군가 재능과 노력이 받쳐준다면 이영미의 표정, 연기, 대사의 톤, 분위기를 카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왕의 소리만큼은 안 된다. 기타가 울부짖고 드럼이 심장을 파괴하는 헤드윅 밴드의 록 사운드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솟구치던 이영미(이츠학 역)의 소리는 속에 강철 심을 박아 넣은 나무배트의 풀스윙처럼 어마무시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는 동안 가급적 작품출연을 자제해 왔던 이영미가 돌아왔다. 8월1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개막하는 ‘미 온 더 송(Mee on the song·이하 미)’이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난다. 남자배우들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모노 뮤지컬이다. 현재 국내 뮤지컬 연출가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태형 연출(이영미의 남편이기도 하다)이 대본과 연출을 맡고, 이영미가 모든 넘버를 직접 작곡했다.

인터뷰 장소인 대학로의 카페에 들어서니, 깜짝이야. 이영미가 먼저 와 있었다. 이영미가 들여다보고 있던 큼직한 노트를 흘깃 보니 악보였다. 음표는 하나도 없는, 코드만 잔뜩 나열된 악보.

-‘미’는 언제부터 구상한 작품인가.

“재작년인가. ‘미’의 제작사인 아이엠컬처 대표님과 김태형 연출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갔다가 어느 여배우(가수일지도)가 하는 모노뮤지컬을 본 일이 있다. 여배우 한 명이 나와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풀며 노래도 하는 공연이었는데 두 분이 공연을 보며 내 생각이 났다는 얘기다. 이런 작품을 해보자기에 그때는 그냥 ‘그럼 좋겠지’라고만 했다. 정말 이런 공연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으니까(웃음). 결국 올 초부터 열심히 곡을 썼다.”

-공연기간이 9일밖에 되지 않는다. 너무 짧아서 아쉬운데.

“힘들어서 짧고 굵게 한 번만 하고 싶다(웃음). 물론 관객의 반응이 좋으면 보완하고 다듬어서 다시 무대에 올릴 생각은 하고 있지만.”

뮤지컬 배우 이영미. 사진제공|아이엠컬쳐


-한동안 무대를 떠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노래는 쉬면 다시 하기 힘들지 않나. 정녕 하늘이 내린 성대란 말인가.

“푸하! 그게 질문이란 말인가. 아이 키우느라 11개월 정도 노래를 안 하고 살았다. ‘이러다 (소리가) 막히는 거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연습이 시작되고, 한두 번 뚫으니까 바로 뚫리더라. ‘나 아직 안 죽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강철 같은 소리를 지닌 이영미란 사람은 어떻게 목을 뚫나.

“우리가 맑은 소리는 아니잖나. 우리 같은 소리는 일주일 정도만 소리를 안 질러도 티가 난다. 진성으로 레나 미 정도의 고음을 지르면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구토가 쏠린다. 그렇게 몇 번 해주면 소리가 나오게 된다. 나도 내 목 구조가 궁금해 이비인후과를 찾은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이 내 성대가 판소리 하는 분들하고 비슷하다고 하시더라.”

-무대가 그립지는 않았나.

“무대라기보다는 내 자리가 그리웠다. 내가 설 수 있는, 빛날 수 있는,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이런 막연한 심경이었다.”

뮤지컬 배우 이영미. 사진제공|아이엠컬쳐


-‘미’는 여가수 미(틀림없이 자신의 이름에서 따왔을 것이다)와 불멸의 삶을 살고 있는 세라의 이야기가 줄기를 이룬다. 이영미 자신의 이야기도 상당 부분 들어있을 텐데.

“에든버러의 여배우는 전직이 창녀였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를 갖고 있겠나. 나도 ‘창녀전문배우’ 소리를 들을 만큼 창녀 역을 많이 맡았지만 진짜 창녀를 이길 수는 없다. 내 인생이 그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연출과 머리를 맞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이영미의 이야기일 수 있으면서도 이영미의 이야기가 아닌 것들이 필요했다. 미와 세라라는 캐릭터의 옷을 입어야 했던 것도 그런 부분이었다.”

-‘미’는 어떤 사람들이 봐야 하는 작품인가.

“지금 위로가 필요한 사람. 우리가 그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없다면 이 작품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듯하다.

“공연장에서 만나게 되길 기대하겠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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