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코치 시절 김호곤(가운데).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실수만 줄였어도 좀 더 쉽게 갈 수 있었지
점유율 축구? 되레 속공 찬스 놓쳐 아쉬워
내가 감독 할 때도 나이나 경력은 안 봤지
이동국, 팀 화합·정신력 강화에 도움될 것
신태용 감독은 영리하니까 본선 진출 확신
축구인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국가대표팀 감독. 이름만으로도 때깔이 난다. 상상해보라.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 훈련시키고,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전술을 맘껏 펼쳐 보인다. 팬들의 우상인 태극전사들을 말 한마디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감독은 외롭다. 모든 책임을 혼자 져야한다.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승리의 영광은 선수들 몫이고, 패배의 비난은 감독이 홀로 감당해야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자리에는 과연 몇 명이나 앉았을까.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1948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처음 대표팀이 구성된 이래 지금까지 총 50명이 감독 타이틀을 달았다.
이들 중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감독은 김정남(74) 한국OB축구회 회장이다. 86월드컵과 88올림픽에서 대표팀을 이끈 김 회장은 재임기간 4년3개월 동안 총 126회의 공식경기를 치렀다. 계산상으로 1년에 평균 30경기를 했는데, 이는 당분간 깨지기 힘든 엄청난 기록이다. 김 회장은 1977년 최정민 감독이 건강악화로 물러난 뒤 34세의 나이에 사령탑에 올라 역대 최연소 감독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김 회장은 1960∼1970년대 명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고, 1970∼1980년대에는 지도자로서 한국축구의 중흥을 이끌었다.
축구대표팀 김정남 전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유공(현 제주 유나이티드)과 울산 현대의 지휘봉을 잡았고, 중국무대에서도 지도자생활을 했다. 2008년 현장에서 물러난 뒤 현재 한국OB축구회장을 맡고 있다. 이처럼 풍부한 경험을 가진 김 회장에게 위기를 맞은 한국축구의 길을 물었다. 한 평생 축구를 하면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온 그에게 지혜를 구했다. 김 회장은 명 수비수 출신답게 수비문제를 먼저 꺼냈다. 특히 수비수들의 실수를 안타까워했다.
“월드컵 예선이라는 게 원래 어렵다. 지난 월드컵에서 우리가 연속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고 해서 쉬운 것 같아 보여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한국축구의 저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고비인 것 같다. 전임 감독에게는 언론을 통해 몇 가지 얘기한 적이 있다. 훈수가 아니라 한국대표팀 경기를 보고 느낀 점을 말했다. 그 때 얘기한 게 수비 쪽이었다. 수비와 관련한 얘기를 많이 했다. 특히 수비수들이 실수를 줄이는 게 급선무다. 그동안 경기를 보면 수비수의 실수가 많았다. 실수로 골을 먹었는데, 그걸 줄였다며 좀 더 쉽게 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김 회장의 지적대로 대표팀의 난제가 수비라는 데 대부분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실제로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기록을 보면, 한국은 8경기에서 11득점 10실점을 했다. 득점이 가장 많은 반면 실점도 카타르와 함께 가장 많다. 많이 넣고, 많이 먹었는데, 이는 공수 밸런스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신태용 감독도 이 부분을 걱정하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실점하지 않는 축구를 하겠다”고 강조했던 신 감독은 대표팀 명단발표 기자회견에서도 수비조직력 강화를 언급했다. 신 감독은 “수비는 조직력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슈틸리케 전 감독 체제에서 조직력이 단단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K리그와 중국 프로축구에서 뛰는 선수들이 수비라인을 구축하고 있어 21일에 소집하면 최소 열흘 정도 손발을 맞출 수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수비 조직력을 극대화시켜서 수비불안을 말끔히 해소해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베테랑의 대표팀 선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내가 감독 시절엔 나이나 경력을 보지 않았다. 현재 가장 잘하는 선수를 (선발의) 기준으로 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감독할 때에는 조광래, 박창선, 허정무 등 노장급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해줬고, 중간급으로 박경훈 최순호 등 지금 프로무대에서 감독을 하는 선수들도 제 몫을 해줬다. 그래서 재미있게 했다”고 회상했다. 팀 분위기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 시절 허정무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자연스럽게 이동국(38·전북)의 대표 선발에 대해서 의견을 구했다.
“(이동국이) 팀에서 좋은 경기를 하고 있으니까 기대를 하고 뽑지 않았나 생각한다. 베테랑을 뽑는 건 전력뿐만 아니라 팀의 화합과 정신력의 결합 등에도 도움이 된다. 선배들이 팀에 합류해서 그 몫을 해주면 응집력이 강화될 수 있다.”
손자뻘 되는 태극전사들에게도 위기의식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경기에는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는 경기가 따로 없다. 경기에 나가면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한다. 선수들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분발해줬으면 한다.”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 스포츠동아DB
김 회장은 마지막으로 태극전사들의 정신력을 특히 강조했다. 이는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느끼라는 의미였다. “전력에는 눈에 보이는 기술, 체력 등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 책임감, 희생정신 등이 있다. 이를 어떻게 결속시켜나가느냐가 중요한데, 이건 감독의 몫이고, 선배들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한다”면서도 “팀이 어려운 시기다. 프로선수라면 이럴 때 무언가 달라야한다. 위기의 순간을 극복할 수 있도록 열정을 가지고 사력을 다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금쪽같은 조언들이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