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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 자충수’에 신약개발 숙제 감감

입력 | 2017-08-21 03:00:00



“이 업계도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뀐 줄 알았는데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다시 불거져 우려스럽다.”

지난해 신약 기술 수출 붐에 고무됐던 국내 제약업계가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이 이어지면서 바짝 움츠러들었다. 한 제약업체 임원 A 씨는 과거 잘못된 관행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 주춤했던 리베이트 관행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검찰이 동아쏘시오그룹을 조사한 데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제약사 16곳에 대해 행정처분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체들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살피고 있다. 검찰이 제약 도매상으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다른 제약업체들의 부정행위도 함께 적발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제약 리베이트 관행은 단기 효과를 내기 가장 쉬운 영업·마케팅 방법이라 여전히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제약업계 임원 B 씨는 “리베이트 관행은 연구개발(R&D) 투자의 반대 지점에 있다. 결국 제네릭(복제약)을 손쉽게 만들고 영업력으로 매출을 올리려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신약 개발 성공률은 0.02% 수준. 1만 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야 겨우 2개의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개발 기간은 평균 10∼15년이 걸리고 비용은 1조∼2조 원이 들어간다. 국내 제약회사들이 섣불리 신약 개발에 도전하지 못한 채 영업에만 매달리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제약업계 분위기는 희망적이었다. 2015년 한미약품이 일으킨 신약 기술 수출 붐은 복제약 영업에만 의존하던 상위 제약업체들이 R&D 투자로 눈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사는 11건의 해외 기술 수출 성공으로 약 3조1102억 원의 예상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말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계약 해지와 늑장 공시 사태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미약품 주가는 18일 종가 기준 36만6500원으로 계약 해지 발표 전날인 지난해 9월 29일 종가 62만 원에서 40.9% 하락했다.

업계 전체에 투자 훈풍이 불 때는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지만 지금처럼 악재가 겹치면 더욱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 사태 이후 신약 개발의 리스크와 장기적 안목에 대해 기업과 투자자 모두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다시 회복세로 접어드는 가운데 오래전 리베이트 관행까지 수사 대상이 되고 있어 업계가 긴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장 동아쏘시오그룹은 최악의 상황이다. 이 회사는 201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올해 1월 ‘강정석 회장’ 체제가 되면서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강 회장은 동아제약 창업주인 고 강중회 전 회장의 손자다. 그러나 강 회장이 14일 구속 기소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회사의 비전도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동아쏘시오그룹은 이달 초 대표 상품인 ‘박카스’가 누적 판매 200억 병을 돌파했는데도 축하 행사 하나 열지 못했다. 유가증권 시장에서도 동아쏘시오홀딩스는 내달 6일까지 매매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동아쏘시오그룹 측은 이번 사태가 상장 폐지로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룹 전체의 신사업 투자가 위축될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올해 4월 27일∼5월 16일 53개 제약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의약품 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7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 월드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바이오 부문 기술 경쟁력은 24위로 중국(23위)보다도 낮았다. 글로벌 상위 제약사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18%인 데 반해 국내 상장 제약사의 경우 7%대 수준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바이오의약품 보고서에서 “국내 시장 규모는 2010년 이후 19조 원에서 정체돼 있다. 한국은 인도, 중국 대비 기술은 상대적으로 우위지만 내수시장이 작아 벽에 부딪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투자 확대와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박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