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업계도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뀐 줄 알았는데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다시 불거져 우려스럽다.”
지난해 신약 기술 수출 붐에 고무됐던 국내 제약업계가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이 이어지면서 바짝 움츠러들었다. 한 제약업체 임원 A 씨는 과거 잘못된 관행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 주춤했던 리베이트 관행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검찰이 동아쏘시오그룹을 조사한 데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제약사 16곳에 대해 행정처분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체들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살피고 있다. 검찰이 제약 도매상으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다른 제약업체들의 부정행위도 함께 적발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글로벌 신약 개발 성공률은 0.02% 수준. 1만 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야 겨우 2개의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개발 기간은 평균 10∼15년이 걸리고 비용은 1조∼2조 원이 들어간다. 국내 제약회사들이 섣불리 신약 개발에 도전하지 못한 채 영업에만 매달리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제약업계 분위기는 희망적이었다. 2015년 한미약품이 일으킨 신약 기술 수출 붐은 복제약 영업에만 의존하던 상위 제약업체들이 R&D 투자로 눈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사는 11건의 해외 기술 수출 성공으로 약 3조1102억 원의 예상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말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계약 해지와 늑장 공시 사태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미약품 주가는 18일 종가 기준 36만6500원으로 계약 해지 발표 전날인 지난해 9월 29일 종가 62만 원에서 40.9% 하락했다.
업계 전체에 투자 훈풍이 불 때는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지만 지금처럼 악재가 겹치면 더욱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 사태 이후 신약 개발의 리스크와 장기적 안목에 대해 기업과 투자자 모두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다시 회복세로 접어드는 가운데 오래전 리베이트 관행까지 수사 대상이 되고 있어 업계가 긴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올해 4월 27일∼5월 16일 53개 제약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의약품 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7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 월드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바이오 부문 기술 경쟁력은 24위로 중국(23위)보다도 낮았다. 글로벌 상위 제약사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18%인 데 반해 국내 상장 제약사의 경우 7%대 수준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바이오의약품 보고서에서 “국내 시장 규모는 2010년 이후 19조 원에서 정체돼 있다. 한국은 인도, 중국 대비 기술은 상대적으로 우위지만 내수시장이 작아 벽에 부딪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투자 확대와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박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