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희생자 모신 日국평사 주지 윤벽암 스님
17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만난 윤벽암 스님은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모시는 이유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다. 한 많은 분들이신데 동포로서 죽어서라도 쉴 집은 마련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만난 윤벽암 스님(61)은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유창한 한국말로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연신 되뇌면서도, 왠지 말끝엔 씁쓸한 기운이 묻어났다.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한 스님은 일본 재일교포 사찰인 국평사(國平寺) 주지. 그가 지금까지 모시던 유해 가운데 신원이 파악된 33구를 위원회와 협력해 1차로 국내에 봉환한다는 사실은 동아일보 7일자 A25면에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13일 방한해 국민추모제와 안치식 등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 온 그가 피곤했던 걸까.
“전혀 아닙니다. 제 평생의 소망이 이뤄지고 있는데 지칠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할아버지 스님’(고 류종묵 스님)은 1965년 도쿄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국평사를 창건하셨습니다. 희생자 유해를 보낼 때 언젠간 꼭 통일된 우리나라로 함께 가겠노라 다짐하셨죠. 기다리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 이번에 유해를 봉환했습니다만, 그 말씀을 못 지켜 드려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유는 별것 아닙니다. 조선 사람이니까요. 정치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라진 나라에서 어느 한쪽을 택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불교의 기본 가르침도 화합 아닙니까. 우린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받아들일 때 어떤 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조선 사람’이면 되는 거였죠. 오늘 마침 비무장지대(DMZ)를 다녀오는 길입니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지만 왠지 친근함이 느껴졌어요. 국평사도 일종의 비무장지대에 있는 절이니까요.”
국평사는 창건 때부터 지금까지 모신 희생자 유해가 3000구가 넘는다. 실은 창건 목적 자체가 유해 안치였다. 다행히 2000여 구는 가족 친지가 모시겠다며 찾아갔지만, 여전히 1000구 정도가 남아 있다. 이번에 33구를 포함해 신원이 확인된 101구가 귀환하지만, 여전히 무연고인 유해가 많아 조사에 애를 먹고 있다.
“이번에 위원회처럼, 많은 재일동포와 일부 일본인도 적극 도와주고 있습니다. 다 고마운 분들이죠. 언제 일본에 오시면 국평사에 꼭 한번 들르세요. 우리 텃밭엔 조선호박, 조선깻잎 등 모두 우리 땅에서 가져온 채소만 심었습니다. 절 내에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말만 합니다. 왜나고요? 모셔진 분들이 고향처럼 느끼길 바라니까요. 살아서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죽은 뒤라도 편안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