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전 세계에서 나와 같은 사람은 총 인구수의 12% 정도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5%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것이 뭘까. 그렇다. 난 왼손잡이다.
영국에서는 왼손잡이라는 점이 그저 조금 불편한 것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와 보니 훨씬 더 심하게 느껴졌다. 학창 시절,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교실을 찾았다. 그런데 학장이 알려주는 정보를 메모하려고 하니 책상 왼쪽에 손 받침대가 없었다. 그때부터 2년간 불편하게 수업을 들었다.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이 이것 때문인지 모르겠다. 밥 먹으러 갔을 때 자리가 왼쪽 끝일 경우가 많았는데 이 또한 왼손잡이에게는 매우 불편한 것이다.
어렸을 때 왼손잡이들의 평균 사망 연령이 오른손잡이보다 9년 더 빠르다는 보고를 읽었다. 그 이유는 모든 기계의 안전장비가 오른손잡이를 보호하도록 돼 있어 왼손잡이가 쓰다 보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란다. 그 연구는 나중에 틀렸음이 밝혀졌지만 그래도 부엌에서 칼을 쓰다가 손을 벤 사람 중에 왼손잡이 비율이 상당히 높다.
서양에서는 왼손잡이 전용 물품을 파는 가게를 많이 봤지만 한국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회사가 제공했던 인간 공학적 마우스는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보관하고, 기본 마우스를 쓰고 있다. 가위를 쓸 일이 있을 때면 다른 직원에게 부탁도 한다.
인생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왼손잡이인 것이 나는 자랑스럽다. 또, 우리 딸도 왼손잡이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를 닮은 점이 하나 더 있어서 더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딸이 학교에 다녀온 첫날 나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이유는 선생님이 사회 적응을 하기 위해서 오른손으로 쓰라고 했기 때문이다. 딸은 그날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서 다음 날에 학교 가기가 싫어졌던 것이다. 둘째 날에 내가 함께 학교에 가서 선생과 면담을 했다. 그런 구시대적인 사고를 절대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뭐, 아마도 이런 일이 요즘은 한국에서 드문 사례겠지만 그 당시에는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그래도 최근에 보조 젓가락이든 뭐든 왼손잡이 전용 물품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팔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 왼손잡이들이 이제는 사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일까?
13일은 ‘왼손잡이의 날’이었다. 여러분도 이날을 계기로 주변에 있는 왼손잡이들을 축하해 주기를 바란다. 오른손잡이 위주인 세상은 하루만이라도 왼손잡이들이 겪는 고충과 불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왼손잡이들은 소수지만 영향력이 강한 것 같다. 평균 지능지수도 약간 높고 왼손잡이 천재 또한 많다. 또한, 글로벌 리더들 중에 왼손잡이가 상당히 많으니 언젠가 우리 왼손잡이들이 뭉쳐 오른손잡이의 헤게모니를 파괴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