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는 집권 초기 책임총리제 등 분권을 강조했으나 100일을 넘어서면서 권력이 청와대로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이런 현상은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부정적인 형태로 구현된 바 있는데, 이를 비판하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같은 길로 들어선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박 전 대통령과는 달리 “의회 및 야당과 협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책임 총리와 책임 장관을 중심으로 정부를 운영하겠다, 청와대 사수대 같은 집권당이 아니라 책임 정치의 보루가 되는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던 후보 시절의 약속과는 아주 다른, 지금의 권력 구조를 만든 기획자는 누구일까.
정부란 국가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위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적 기구와 체계를 가리킨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를 누가 책임지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당정 관계에 기초를 둔 정당의 정부’가 그 핵심이다. 한국 정치에서 이런 종류의 정부관은 실현된 적이 없다. 그간 정부는 행정부로 좁게 이해되거나 대통령의 정부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강조했던 ‘의회와의 협치론’ ‘책임 총리-책임 장관론’, 나아가 ‘정당 정부론’은 하나같이 옳은 방향이었다. “일상적인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책임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하고, 총리와 장관이 하나의 팀으로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는 연대 책임제를 구현하겠다”는 것은 좋은 약속이었다. “정당이 생산하는 중요한 정책을 정부가 받아서 집행하고 인사에 관해서도 당으로부터 추천받거나 당과 협의해 결정하는, 그렇게 해서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정부…이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저는 이미 이렇게 공약을 했다”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민주당 정부일까? 악명 높았던 청와대의 ‘내각 통할권’은 옛 유물이 되었을까?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가운데 어느 쪽이 집행부 권력일까?
청와대 핵심 세력들은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들어 지금처럼 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듯하다. 그것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콘크리트처럼 만들고 싶어 했던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그것이 시민주권의 기준은 될 수 없다. 여론조사 수치가 높다고 한들 그것이 좋은 정부, 좋은 대통령임을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흑인 인구 비율이 전체의 8분의 1밖에 안 되고 인종 차별이 극심한 미국에서 8년을 통치한 버락 오바마나 12년째 독일 정부를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의 사례에서 보듯, 통치 기간 내내 반대 여론에 시달려도 얼마든지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통치자가 될 수 있다.
아모스 펄머터라는 정치학자가 있다. 대중적 지지를 받는 권위주의를 연구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내각과 정당 옆에서 작동하는 ‘병렬구조(parallel structure)’의 역할이었다. 그 구성원들은 집권을 주도했고, 그 뒤에는 여론 동원 기능과 내부 권력통제 기능을 전담함으로써 국가 전체를 유기적으로 통합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내각은 있으되 책임과 권한은 없고, 정당은 있으되 정당 정치는 없는 체제가 유지되었다.
문제는 이런 체제가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는 데 있다. 내각과 국무회의를 대통령뿐만 아니라 의회에 책임지는 최고의 정부 조직이 되게 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를 경험하면서 민주당이 앞장서 약속했다. 집권당으로 하여금 책임 정부를 구현케 하겠다는 것을 민주당 후보만큼 강조한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선거대책본부를 이끌었던 분들께 정말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이 만들고 싶어 했던 정부의 모습이 맞는가? 청와대를 통해 내각과 집권당을 대통령의 지지 관리를 위해 존재하는 부속물로 만들고 싶었던 게 원래의 계획이었는가?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