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치 약정금 매달 빠져나가… 단체측 “계좌 정지돼 방법없어” 당국 “법인 자발적 취소땐 환불가능”… 피해자 2000명 집단 손배소 추진
어려운 아동을 돕겠다며 모금한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S사단법인의 후원자 일부가 피해 사실을 알고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기부금을 내고 있다. 신용카드 할부로 1, 2년 치 후원금을 한 번에 납부해 매달 일정액이 자동 결제되는 것이다. S사단법인 측은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밝혀 후원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2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S사단법인이 2014∼2017년 4만9000여 명의 후원자를 상대로 모금한 128억 원 중 67%인 86억 원가량이 카드 할부로 납부됐다. 통상 구호단체들은 계좌 이체 방식으로 후원금을 모금하지만 S사단법인은 “안정적으로 도와달라”며 카드 할부를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컨대 후원자가 1년 약정으로 120만 원을 일시불 결제하면 매달 10만 원씩 자동으로 카드 결제가 되는 방식이다. 후원자가 잔액을 모두 인출하면 후원금이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는 계좌 이체보다 모금 기관에 유리한 방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카드 할부로 기부금을 받는 것은 드문 사례”라며 “일부러 이런 방식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매달 5만 원씩 후원금을 카드 할부로 납입해 온 황모 씨(29·여)는 “어려운 아동을 돕는다는 마음에 후원했다 사기당한 것도 마음 아픈데 후원한 걸 취소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처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S사단법인은 홈페이지에 “후원이 끊길까 걱정된다”는 취지의 사과문을 올려 후원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법인은 “오해가 있었다. 설립 후 4년간 지원금 및 교육 콘텐츠 30억 원 상당을 아동들에게 지원했다”며 경찰 수사 결과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128억 원을 모금해 약 2억 원만 기부금으로 사용하고 10억 원 안팎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14일 S사단법인 회장 윤모 씨(54)와 대표 김모 씨(37·여)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3년간 3만 원씩 기부해온 후원자 이모 씨(48)는 “마음이 치유되면 다른 곳에 기부를 이어갈까 고민했는데 사과문을 보니 기부에 대한 마음이 아예 사라졌다”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