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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도서관]“깡통따개 있어요?” 그가 찾아 헤맨 이유는…‘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입력 | 2017-08-23 17:27:00

소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에서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외된 것들의 가치를 전하는 구효서 씨. 동아일보DB


‘이튿날 수돗가에서 깡통을 씻다가 나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요즈음 깡통은 모두 손가락으로 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기에는 일 원짜리 동전만한 구멍이 나 있다는 것. 그대로는 꽃을 꽂을 수가 없었다. 깡통따개로 도려내지 않으면 깡통 하나에 기껏해야 한두 송이 꽂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깡통따개 순례가 시작됐다. 그것은 순례일 수밖에 없었다.

“깡통따개 있어요?”

깡통 따는 흉내를 커다랗게 해보이며 늙은 보살에게 물었다. 보살은 고개를 흔들었다.

“거 왜 고등어 통조림 같은 거 딸 때 쓰는 거 있잖아요?”

“예서 비린 거 먹을 일 없잖어.”

(…)

가게에도 깡통따개가 없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만 같아 나는 잠시 멍해졌다.

“요샌 죄 원터치 캔이라…”

혹시 누구네 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가겟집 주인은 직무유기성 발언을 했다. 있어두 병따개 겉은 다 한데 붙어 있을 거유. 어쩌구 하면서. 방안에 꽃을 들여놓겠다는 계획이 하루 만에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었다. 암자에도 없고, 마을의 유일한 잡화점에도 없는 깡통따개.’

-구효서 소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중에서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의 주인공은 소설가다. 그는 서점에 가서 무슨 신간이 나왔는지 살펴보고 인근 청국장 집에서 청국장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는 집중해서 소설을 쓰겠다며 아내와 아들을 둔 채 절로 향한다. 막상 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깡통따개를 찾는 일이다. 깡통에 꽃을 꽂아 방을 장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찾아 헤매도 깡통따개를 구할 수 없다.

깡통따개는 소외된 것들에 대한 상징이다. 여기엔 소설가도 포함돼 있다. ‘깡통따개…’ 속 소설가는 글 쓰는 것만으론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힘겹다. 세상을 버젓이 살아가기에 소설가란 직업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깡통따개를 이용해 깡통을 열었을 때의 손의 감각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황도 통조림을 열 때, 깡통의 가장자리를 둘러가며 깡통따개를 시소처럼 움직여 길을 낼 때의 감각 말이다. 잘려진 깡통 가장자리가 날카롭기에 깡통을 열 때는 깡통따개로 뚜껑을 살살 밀어 올려야 한다. 설탕물에 잠긴 샛노란 복숭아를 봤을 때 입에 가득 도는 군침. 깡통따개가 소외된 것처럼 보여도 그에 얽힌 감각은 이렇듯 오래 간다. 문학 또한 이 시대에 전해지는 향기가 강렬하지는 않다 해도 천천히 그윽하게, 오래 가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