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외교부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한반도 평화는 우리가 지킨다는 자세와 철저한 주인의식, 국익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관계가 교착상태지만 ‘한반도 신(新)경제구상’이 실현되도록 준비하라”고 통일부에 지시했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남북이 경제 교류를 통해 한반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북방 경제와 연계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베를린 구상’을 재확인하며 특히 남북 경제협력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북의 도발 움직임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미국 내에서도 ‘선(先) 대화, 후(後) 군사옵션’ 기류가 일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김정은을 호칭하며 “그가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긍정적인 무엇인가가 일어날 수 있다”며 북-미 관계의 호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앞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가까운 미래에 북과 대화가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에 대해 ‘최고의 압박’ 정책을 견지하던 미국이 어느 순간 ‘최고의 관여’로 돌변해 우리 눈앞에 북-미 대화가 펼쳐질 수도 있다.
‘괌 포위 사격’ 위협 이후 잠행해 온 김정은도 8일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소재 개발 생산을 담당하는 화학재료연구소 현지지도로 모습을 드러내 핵무장 의지는 거듭 밝혔으나 미국을 향해 직접적인 위협이나 비난은 하지 않았다. 이달 말까지 계속될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 기간과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다음 달 9일까지 북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으면 한반도 정세는 예상보다 빨리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우리를 뛰어넘는, 말 그대로 ‘코리아 패싱’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우리도 ‘제재와 대화’라는 카드를 양손에 쥐고 북을 상대해야 한다. 대화를 할 때 하더라도 북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억제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 점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2일 국회에서 “현 정부에서 전술핵 배치 문제를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단정적으로 부인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무조건 대화’ 식의 일방적인 접근으로 풀어가기에 북핵 문제는 너무 위중하고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