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훈련은 실전처럼
“여기 화천은 전방이라 민방위 훈련도 실전처럼 해요. 이번엔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긴장 때문에 방독면까지 착용하라더군요. 근데 주민 100명 중 절반 이상이 80대라 이제는 훈련받기도 많이 힘들어했어요.”―정병록 씨(71·강원 화천군 아2리 이장)
“올해 한반도 분위기가 아슬아슬했잖아요. 그래서인지 외국계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나눠 주겠다며 재난 배낭(정수필터 정수알약 비상식량 등이 든 배낭)을 단체 주문하는 곳이 많았어요. 화생방 방독면은 공급이 부족해 주문이 밀린 상태예요.”―조세진 씨(40·산업안전용품 판매업체 가자안전센터 부장)
“훈련에서 심폐소생술을 연습했어요. 얼굴이랑 몸통만 있는 인형 가슴을 힘껏 눌렀는데 팔만 아프고 잘 안 눌러졌어요. 그래도 친구를 일어나게 하려면 쉬지 않고 30번을 눌러야 한대요.”―허율 양(5·서울 용산구 소재 어린이집 원아)
“최근 영국과 두바이 고층 건물에서 잇따라 큰불이 났지요. 그 때문에 담당 직원이 모두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주의를 기울여 가면서 훈련을 준비했습니다. 훈련 준비로 당일 새벽 4시에 퇴근할 정도였죠. 훈련을 하며 셔츠가 완전히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지만 그래도 훈련 성과가 성공적이어서 뿌듯했습니다.”―고영섭 씨(38·롯데물산 소방안전팀 대리)
“집에서 아이들과 놀이하듯 안전 교육을 합니다. 누가 먼저 탁자 아래에 숨는지 내기를 하거나 방석을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하죠. 그랬더니 아이가 어느 날 탁자 밑에 인형을 (지진 대피할 때처럼) 가득 숨겨뒀더라고요.(웃음)”―손아름 씨(37·직장인)
대피소가 어디죠?
“스마트폰으로 가까운 대피소를 검색할 수 있다는 ‘안전 지킴이’ 앱을 내려받았어요. 정부에서 만든 앱인데, 민방위 훈련 도중 사용하려고 했더니 작동이 안 되더군요. 훈련에 적극 참여하라면서 관련 앱은 불통이고 황당하지 않나요? 민방위 훈련 다음 날 열어보니 그제야 업데이트를 완료했는지 검색이 되더라고요. 완전 뒷북이죠.”―이모 씨(37·회사원)
“핵 공격이나 화학 테러에 대비하려면 공기 정화 시설을 갖춘 방공 대피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피소는 대부분 지하철이나 건물 지하의 임시 피난처예요. 모든 종류의 테러에 대비할 수 있는 대피소 건설비용은 15억 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국가에서 지원받더라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엄두를 못 내는 상황입니다.”―김태환 씨(58·용인대 경호학과 교수·한국재난정보학회 부회장)
어릴 때부터, 반복 또 반복
“교육 효과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높습니다. 가장 중요한 두세 가지 요점을 강조하고 반복 연습을 시키는 게 중요하죠. 실제로 약 2년 전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불이 났는데 교육을 받은 3∼6세 유아 30여 명이 1분 만에 모두 안전하게 탈출했어요.”―박준희 씨(47·서울시 민방위 강사)
“일본에선 ‘재난의 날’마다 대피 교육을 받아요. 비상시 머리 보호 모자로 변형되는 방석을 쓰고 신속히 운동장으로 대피하죠. 일본 학교는 대부분 이 방석을 쓰거든요. 회사에도 식수와 식량, 개인 헬멧은 기본으로 다 구비돼 있어요.”―와타나베 무쓰미 씨(33·회사원·한국 7년 거주 경험자)
“2014년 민방위대에 응급처치 방법을 가르치던 중 갑자기 대원 한 명이 쓰러졌어요. 곧바로 뛰어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몇 분 만에 의식을 되찾았죠. 위기의 순간에 힘을 발하는 건 역시 평소 익혀둔 응급처치예요.”―반미순 씨(54·민방위대 강사)
“지난해 경북 지역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한 후 재난 대비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경북 의성에는 안전체험관을 짓고 있어요. 2019년 7월경 완공되면 지진 체험, 화재 진압 훈련, 자동차 전복 탈출 체험 등 14개 훈련을 할 수 있게 됩니다.”―강정진 씨(51·경북교육청 교육안전단 사무관)
재난 배낭 준비는 필수
“재난 배낭은 재난 조건과 생존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내용물이 다릅니다. 지진은 한 곳에서 버텨야 하는 경우가 많아 물, 정수필터, 비상식량, 의약품 등이 들어가고, 전쟁의 경우엔 보온용품, 이동식 변기 등이 들어가지요. 가장 큰 풀세트 배낭은 15만 원 안팎인데 15가지 물품이 들어갑니다. 하나쯤은 준비해 두는 게 필요합니다.”―김종도 씨(41·회사원·생존전문가)
“민방위 기본법상 원래 모든 국민이 민방위 훈련에 참가해야 합니다. 공공기관이나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대피 훈련에 참가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처벌 조항이 없고 현실적으로 관리 감독이 불가능하다 보니 공공기관이나 기업 위주로 훈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허성윤 씨(행정안전부 민방위과 서기관)
남모르게 대비하는 사람들
“재난 관련 인터넷 카페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회원 가입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관련 물품에 대한 문의도 급증했고요. 전쟁이 나면 전기 가스 수도가 끊기기 때문에 방수포, 탄통스토브, 휴대용 변기, 냄새흡수응고제, 정수필터, 핫팩 등이 중요하겠죠. 쿠킹포일과 랩 등은 용도가 다양해 준비해둘 만하고요.”―이종택 씨(59·네이버 카페 ‘서바이벌리스트’ 매니저)
“야산이나 시골 땅을 산 뒤 컨테이너를 활용해 개인 대피소를 짓는 프레퍼족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심지어 수백 명이 야산 하나를 통째로 사서 집단 대피소를 만들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차로 한두 시간 거리에 산장을 가장한 지하 대피소를 짓는 거죠. 같은 종교를 믿는 이들끼리 준비한다는 소문도 있고, 워낙 은밀하게 일을 진행해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김모 씨(50대·재난카페 회원)
“라면은 비상식량으로 적합하지 않아요. 유통기한이 5개월밖에 되지 않거든요. 차라리 2년 이상 보관 가능한 소면을 추천합니다. 비상식량이 구비된 스타렉스를 시골 모처에 준비해 두는 사람도 봤고, 안방에 딸린 화장실에 대비용품을 잔뜩 쌓아두는 경우도 흔합니다.”―우승엽 씨(44·도시재난연구소장)
“남편이 전쟁·재난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500원도 허투루 쓰지 않던 사람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자 재난용품 50만 원어치를 지르더군요. 전쟁이 나면 순식간이라던데 이런 준비가 의미 있나요? 게다가 ‘냉장고 파먹기’만 해도 두 달 이상 버틸 수 있는데….”―김세나 씨(40·회사원)
“비상시 탄통스토브는 필수예요. 나뭇잎, 나뭇가지 등 적은 땔감으로 강한 화력을 낼 수 있거든요. 흡수응고제는 배설물을 흡수하고 응고시켜 냄새를 없애줘요. 물을 깨끗이 만드는 정수 알약과 샤워 대신 몸을 닦을 일회용 타월도 구비해두면 좋습니다. 쿠킹포일은 그릇을 만들거나 피부를 보호할 수 있죠.”―김모 씨(60대)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손유경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