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2면의 고개숙인 손기정 선수의 모습.
충동적인 삭제가 아니었다. 한 차례 지웠지만 흔적이 남아 다시 지웠다. 일장기 말소의 의지가 투철했다는 뜻이다.
동아일보DB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 일본 주간지의 사진을 복사해 게재한 것이지만 가슴의 일장기가 지워져 있다(왼쪽).
경기도 경찰부장이 1936년 8월27일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앞으로 보낸 비밀정보보고 문서인 ‘소화 11년 경찰정보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아일보DB‘일장기 말소 사건’을 주도한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
당시 미나미 지로 조선총독은 8월 29일자로 동아일보의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다. 8명의 기자가 경기도 경찰부에 구속됐다. 사건의 직접 책임자로 지목된 이 기자와 현진건 사회부장 등 5명은 40일에 걸쳐 극심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언론기관에 일절 참여 안 할 것’이라는 서약서에 강제로 서명한 뒤에야 석방됐다.
송진우 동아일보 사장과 김준연 주필, 설의식 편집국장 등 회사 주요 경영진도 축출됐다. 총독부는 주주총회에서 인촌 김성수 선생과 송진우 사장을 물러나게 했고, 인촌이 소유 주식을 신임 백관수 사장에게 양도한 11개월 뒤에야 동아일보에 대한 발행정지를 해제했다.
광복 이후 1945년 12월 1일자로 동아일보가 중간(重刊)되면서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강제 퇴직자 중 이 기자 등 희망자는 모두 복직했다. 그러나 이 기자는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납북된 뒤 돌아오지 못했다.
동아일보DB25일 손기정기념관에 세워진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의 흉상.
2017년 8월 25일 서울 중구 손기정로 손기정기념관에 이길용 흉상이 손기정 선수의 동상과 나란히 놓였다. 1936년 이 기자가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사진이 동아일보에 실린 날이다. 이제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일깨운 두 영웅이 81년 만에 한 자리에 있게 됐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