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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의 잡학사전] 허준, 허재, 허임…허씨는 왜 외자 이름 많을까

입력 | 2017-08-27 17:34:00


허씨 중에는 유독 이름이 외자인 이들이 많다. 그 이유가 뭘까. 왼쪽부터 허준, 허재, 김보성(본명 허석). 동아일보DB.


요즘 방영 중인 tvN 주말 연속극 ‘명불허전’에는 조선 선조 시절 명의로 이름이 자자했던 허임(許任·1570~1647 추정)이 등장합니다. 허임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명의 허준(許浚·1539~1615)도 인정한 침술의 대가였습니다. 선조 37년 임금이 침술에 대해 묻자 허준이 “신은 침을 잘 모릅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라고 답했을 정도였습니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명의 모두 허씨에 이름이 외자(한 글자)라니 신기하지 않나요? 한국 사람은 성(姓)을 제외하면 이름이 두 글자인 게 기본이지만 허씨 중에는 이렇게 유독 외자 이름인 인물이 많습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1569~1618) 같은 옛날 사람은 물론 ‘농구 대통령’ 허재 국가대표팀 감독(52)도 이름이 외자입니다. 허 감독 큰아들인 농구 선수 허웅(24)도 그렇고, 역시 농구 선수인 허 감독 둘째 아들 역시 허훈(22)으로 이름이 외자입니다. 한글학회 이사장을 지낸 전 서울대 교수(언어학) 눈뫼 선생도 농구 선수하고 똑같이 허웅(1918~2004)입니다.

방송인 중에서는 ‘의리’로 유명한 김보성 씨(51) 본명이 허석입니다. 김 씨는 데뷔 초에는 본명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거꾸로 본명이 이상룡인 방송인 허참 씨(69)도 예명을 외자로 지었습니다. 허씨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외자 이름이 많은 걸까요?

KBS ‘가족오락관’을 통해 ‘국민 MC’로 자리매김했던 허참 씨는 ‘허, 참, 말 잘하네’라는 평가에서 예명을 따왔다고 합니다.



● 외자 이름은 특권이었다

여기서 퀴즈 하나. 조선 정조의 이름은? MBC 연속극을 통해 친숙해진 것처럼 이산(李¤)이 정답입니다. 이때 산은 계산한다고 할 때 산(算)과 같은 글자입니다. 세종대왕 이름은 이도(李¤)인데 이 ‘¤’ 역시 세종대왕 이름을 적을 때 말고는 거의 쓸 일이 없는 글자입니다. 조선 철종처럼 태어났을 때는 임금이 될 가능성이 낮았던 왕족은 즉위하면서 이름을 고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2007~2008년 MBC에서 방영한 연속극 ‘이산’. 동아일보DB.


임금 이름을 이렇게 특이한 글자로 지은 이유는 뭘까요?

한자문화권에는 기휘(忌諱) 또는 피휘(避諱)라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휘(諱)는 이름이라는 뜻이고 기와 피를 합치면 ‘기피’가 됩니다. 요컨대 이름을 밝히는 걸 꺼리는 전통이 바로 기휘 또는 피휘인 겁니다. 여전히 부모님 등 웃어른 성함을 이야기할 때 ‘김 ○자, ○자’처럼 말해야 예의바르다는 말을 듣는 건 바로 이 전통 때문입니다. 예전 사람들이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호를 지어 부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 전통에 따라 임금이나 성현(聖賢) 이름은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경죄에 속했습니다. 중국 당나라 태종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라 불교에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세(世)를 빼고 관음보살이 됐고, 성현 중 성현이라 할 수 있는 공자 선생 이름이 공구(孔丘)라서 TK 지역에 있는 광역시 이름은 대구(大丘)에서 대구(大邱)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시대 임금의 업적 가운데 귀감이 될 만한 내용을 모아 편찬한 국조보감(國朝寶鑑). 기휘 전통 때문에 세종대왕의 휘(諱)와 자(字)를 붉게 가렸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그런데 만약 일상적으로 쓰는 한자를 임금이 이름으로 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의사소통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조가 산(算)을 이름으로 썼다면 계산, 암산, 주산(珠算) 같은 말을 전부 쓸 수 없게 됩니다. 이름을 두 글자로 쓰면 이 부담이 더욱 커지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쓸 일이 별로 없는 한자를 골라 이름을 한 글자로 지었던 겁니다.

여기서 시작해 왕조 시절에는 이름을 한 글자로 짓는다는 것 자체가 왕족만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허씨는 왕족도 아닌데 왜?


허씨가 외자 이름을 쓰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된 건 후삼국 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견훤과 한강 유역 패권을 두고 타투고 있던 왕건은 군량미가 떨어져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현재 서울 강서구·양천구 일대 호족이던 허선문(837~?)이 군량미는 물론 말과 군사까지 내주면서 왕건이 승리하도록 도왔습니다.

양천 허씨 시조인 허선문의 묘비. 양천허씨대종회 홈페이지.


나중에 고려가 들어면서 왕건은 허선문의 공을 치하해 그에게 삼한공신(三韓功臣) 칭호와 함께 그가 본거지로 삼고 있던 공암(孔岩)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내렸습니다. 허선문은 공암 허씨(현재 양천 허씨) 시조가 됐습니다. 왕건은 그러면서 이 가문에 대를 걸러 외자 이름을 쓸 수 있는 특권을 줬습니다. 할아버지가 외자 이름을 쓰면 아버지는 건너 뛰고 손자가 다시 외자 이름을 쓸 수 있는 방식이었죠.

당시는 아직 호족 세력이 힘이 남아 있던 상태. 양천 허씨 가문은 “우리는 가야 김수로왕 때부터 왕족이었다”며 대대로 외자 이름을 쓰기로 결정합니다. 양천 허씨 가문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건 가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김수로왕과 그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을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문이 외자 이름을 쓰는 건 가문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수단인 겁니다.

‘허황후’ 허왕옥과 가야 김수로왕 영정. 김해시청 홈페이지.



●그 부끄러운 전설은 사실일까?



넓은 의미로 보면 배우 김수로 씨도 본명(김상중)과 이름이 같은 선배 연기자가 있어 피휘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씨는 광산 김씨로 이 본관은 김수로왕을 뿌리로 둔 ‘가야 계열’이 아니라 김알지를 뿌리로 하는 ‘신라 계열’입니다.

이런 역사 때문에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그리고 이로부터 분파한 허씨는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집안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김수로왕과 왕비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가야에 큰 불이 났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불을 끄려고 제 아무리 애를 써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김수로왕이 불가에 소변을 보니 불이 꺼졌습니다. 이에 임금은 여기저기 소변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때 불똥이 수로왕 국부에 불똥이 튀었고, 남은 흉터는 결국 점이 됐습니다. 그 뒤로 두 사람 자손들은 고추에 점을 달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입나다만, 들리는 풍문에 아내 외도를 의심하던 양천 허씨 남편이 있었는데 아들이 태어나자 고추를 확인했고 점이 있어 안심했다나 뭐라나. 2015년 기준으로 33만 명이 못 되는 허씨는 그렇다고 쳐도 김씨는 김해 김씨만 446만 명에 육박하는데… 설마… 아니겠죠?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