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1심 선고 이후]이재용 1심 판결문 입수 분석… 항소심 핵심 쟁점은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의 뇌물공여 등 5가지 혐의 모두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무죄로 인정된 부분이 많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의 혐의를 뒷받침한다고 제시한 법 논리와 증거 관계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항소심에서 이 부회장 유죄 여부를 놓고 특검과 삼성 간에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1심 유죄 대부분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힐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1심 판결문을 입수해 검토한 결과와 항소심의 쟁점을 심층 분석했다. 》
수뢰죄는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경우 적용된다. 그런데 재판부는 공무원이 아닌 최 씨가 돈을 받은 게 박 전 대통령이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공무원(대통령)이 민간인(최 씨)과 뇌물수수를 공모해 ‘공동정범’인 민간인으로 하여금 뇌물을 받게 하는 경우 이는 공무원 자기 자신이 받는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박 전 대통령-최순실 ‘공동정범’ 판단 무리”
하지만 법원 안팎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를 ‘공동정범’으로 판단한 건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동정범은 두 사람 이상이 범죄단체처럼 범죄행위를 단계별로 나눠 맡고 실행에 옮겨서 전체 범죄를 완성한 경우의 형사처벌 대상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최 씨가 뇌물 범행 아이디어를 내고 뇌물 요구는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는 행위는 최 씨가 각각 나눠 맡았다고 봤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를 ‘한 몸’으로 본 것인데 솔직히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를 들어 장관인 아버지를 둔 아들이 돈을 받아도 아버지에게 책임을 묻는 건 상당히 어렵다”고 밝혔다. 두 사람을 공동정범으로 묶어서 뇌물의 이익을 공유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뇌물죄에서 두 사람을 공동정범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부모와 자식 관계나 부부간(어느 한쪽이 공무원인 경우)에도 공무원이 아닌 쪽이 돈을 받았을 때 두 사람의 뇌물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가 남남 사이인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를 공동정범으로 본 것은 여론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분석이 많이 나오면서 법조계에선 법에 없는 이른바 ‘민간인 뇌물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재판부가 삼성의 최 씨 모녀 승마 지원을 ‘단순수뢰죄’가 아니라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민간인이 돈을 받은 경우 적용되는 ‘제3자 뇌물죄’로 봤어야 했다는 의견이 법원 내부에서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의 도움을 받기 위한 명시적 청탁을 한 증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과 2015년 7월, 2016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할 때도 구체적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본 것이다. 다만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주요 현안을 경영권 승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고 ‘단순수뢰죄’를 적용한 것이다.
서울 지역의 한 고위 법관은 “이 부회장의 뇌물죄와 연계된 박 전 대통령 뇌물죄의 유죄가 선고돼야 할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이런 판결이 나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단순수뢰죄’가 아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부정한 청탁의 구체적인 입증이 어렵다고 봤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소심에선 우선 특검과 삼성 측이 ‘단순수뢰죄’와 ‘제3자 뇌물죄’ 중 어떤 죄를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를 둘러싼 법리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특검이 ‘단순수뢰죄’ 적용이 무리한 것으로 판단해 ‘제3자 뇌물죄’로 죄명을 바꿀 경우 ‘묵시적 청탁’만으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