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1심 판결, 증거 인정 기준 들쑥날쑥 논란 법조계 “같은 증거에… 이해 안가” “결론 먼저 내놓은 것” 뒷말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과 독대를 하면서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을 했는지 판단하면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업무수첩 내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안종범 수첩’과 대통령비서실이 독대 준비를 하며 작성한 이른바 ‘말씀자료’에 경영권 승계 관련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해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관련된 대화를 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 16억2800만 원을 뇌물이라고 판단할 때는 ‘안종범 수첩’의 내용을 증거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났던 2016년 2월 15일자 수첩에 ‘빙상, 승마’가 적혀 있는 점으로 볼 때 독대에서 영재센터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다. 같은 ‘안종범 수첩’ 내용을 두고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얘기는 안 했을 것’, ‘영재센터 청탁은 했을 것’이라고 정반대의 판단을 한 것이다.
이는 청와대가 지난달 특검에 넘긴 ‘캐비닛 문건’과 앞서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고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업무수첩에 적힌 ‘삼성 경영권 승계 모니터링’ 메모 등을 증거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 재판부는 민정수석실 관계자를 증인으로 불러 문제의 ‘캐비닛 문건’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는지 확인했을 뿐, 정작 해당 문건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는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이는 대통령비서실이 작성한 이 부회장 독대 ‘말씀자료’에 대해 내린 판단과 완전히 다른 잣대다.
이처럼 들쑥날쑥한 증거 인정 기준 때문에 재판부가 결론부터 먼저 내놓은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법조계는 “항소심에서는 증거 채택과 사실관계 인정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배석준 eulius@donga.com·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