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 출판부가 설립되었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가 설립을 이끌고 초대 출판부장을 맡았다. 첫 책은 같은 해 4월에 나온 최현배의 ‘우리말본 첫재매’였다. 소리갈(음성학)을 다룬 ‘첫재매’에 씨갈(품사론)과 월갈(문장론)을 더하여 1937년 2월에 역시 연희전문학교 출판부에서 ‘우리말본’이 나왔다. 외솔은 출근할 때마다 아내에게 “집에 불이 나면 이 원고부터 옮겨라” 당부했고 원고를 독에 넣어 마당에 묻어놓기까지 했다.
서울대 출판부(현 서울대 출판문화원)는 1961년 교내 인쇄소로 출발해 1975년부터 출판 부문을 겸하였다. 대학에 인쇄소를 둘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미네소타대와 국제협조처(ICA) 등이 서울대 재건 계획과 원조에 나선 덕분이었다. 서울대 출판부는 1998년까지도 일부 출판물을 활판인쇄로 간행하였다. 그해 5월 말에 우리말과 7개 외국어 4만2000여 종, 특수기호 3000여 종 등 활자 수십만 개가 출판부에서 공업용 제련소로 옮겨지면서 우리나라의 활판인쇄 시대가 막을 내렸다.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상업성이 없어 펴내기 어려운 책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 출판부들이 그런 책들을 꾸준히 펴내며 묵묵히 기여해 왔다. 대학 출판부라고 하면 학술도서와 대학 강의 교재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목록을 살피면 일반 독자가 읽을 만한 좋은 책들도 적지 않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