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계수미 전문기자가 만난 여성 CEO - 그룹 세브 코리아 팽경인 대표
《160년 역사를 지닌 프랑스 그룹 세브의 대표 브랜드인 테팔이 국내에 소개된 지 20년이 됐다.
1997년 한국 지사인 그룹 세브 코리아가 문 연 해에 마케팅 매니저로 입사해 2009년부터 CEO를 맡고 있는 팽경인 대표(54). 그는 “테팔이 그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성장한 비결은 한국 소비자의 생활습관과 선호도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에 있다”고 밝힌다.
팽 대표는 한국 소비자를 위해 글로벌 제품의 모양과 기능을 바꿔달라고 본사에 요청하는가 하면, 한국형 신제품 주문도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 가정에 편리하고 풍요로운 일상생활의 행복을 선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일하는 그를 만났다.》
한국 소비자는 깨끗한 세척과 위생적인 보관 중시
예를 들어 믹서나 그릴은 각 부속품이 손쉽게 분리돼 깨끗하게 씻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무선주전자도 내부 세척이 가능하도록 주입구를 넓게 디자인 했다. 일찍이 토스터는 안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덮는 뚜껑을 고안했다.
이뿐 아니다. 한국 냄비요리 문화에 대해 소비자 조사를 한 후 한국인 셰프와 함께 용도에 따른 냄비 7종을 개발했다. 뚝배기, 라면냄비, 찌개냄비, 전골냄비 등인데, 풍미를 살리는 뚝배기 요리는 뚜껑에 돌기를 넣어 증발한 수분이 가운데 떨어지도록 하는 등 냄비 쓰임새에 따라 최적화된 기능을 넣었다.
“라면은 빨리 끓여 간편하게 즐기는 음식이니, 라면냄비는 가볍게 만들고 물조절을 할 수 있도록 눈금을 넣었어요. 또 뚜껑에 라면을 덜어 먹을 수 있도록 오목하게 디자인하고 뚜껑 안쪽에 꼭지 나사못도 없앴죠.”
국물 맛이 중요한 냄비요리를 할 때 숟가락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뚜껑 꼭지에 홈을 파서 수저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디지털 디스플레이 화면이 있어 사용 모드, 속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블렌더 등 팽 대표의 설명을 듣다보면 제품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소비자를 배려한 마음이 엿보인다.
뚝배기, 라면냄비, 전골냄비, 찌개냄비 등 용도별 냄비. 뚜껑 꼭지에 수저를 올릴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다.
주방용품 브랜드에서 종합생활가정용품 브랜드로 입지 다져
“한국 소비자들에게 주방용품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주방가전제품을 내놓았고, 더 나아가 생활가전으로 영역을 넓힐 수 있었지요.”
팽 대표는 “테팔이 이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종합생활가정용품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말한다.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이미 다리미, 공기청정기, 이미용기, 무선청소기 등을 선보여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룹 세브 본사에서 매년 300여개의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팽 대표는 이 중 한국 소비자에게 맞는 200개 가까운 제품을 해마다 내놓고 있다. 그는 “테팔 제품의 편리함을 경험한 후 ‘그간 이 제품 없이 어떻게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도록 ‘숨은 니즈’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집밥의 소중함 널리 알리는 테팔의 따뜻한 집밥 캠페인
팽 대표는 그룹 세브 코리아 내에서도 테팔의 집밥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매월 셋째주 금요일에는 직원 모두 오후 5시에 퇴근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해먹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매년 한두 번씩 직원 가족들을 초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요리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테팔 초고속 블렌더 울트라 블렌드. 시간과 속도, 분쇄되는 과정에 대한 정보를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탄력근무제, 육아 휴직 등 엄마 아빠가 일하기 좋은 회사
“테팔의 한국 현지화는 제품과 서비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에요. 광고, 홍보, 가격, 유통, 인사, 기업문화, 사회적 책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죠.”
팽 대표는, 예를 들어 광고, 홍보에 있어서도 한국에 맞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도록 공을 들인다고 설명한다. 테팔의 혁신 기술을 설명하는 어려운 용어들을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반드시 한글로 번역하고 한국에서 쓰는 용어로 수정 작업을 거치도록 한다. 그룹 세브 코리아는 전 직원이 참여하는 사랑 나눔 바자회, 보육시설 어린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쿠킹클래스 등 사회공헌활동으로 서울 시장 상을 받기도 했다.
그룹 세브 코리아의 여성 임원 비율은 50%에 이른다. 한달에 한번씩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30분 단위로 출근시간을 정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 자유로운 육아휴직, 사내 수유실 등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 스물여섯 살, 열일곱 살 된 딸 둘을 친정어머님이 도맡아 키워주셨으니 참 죄송하고 감사하죠. 전 여자 후배들에게 일찍 결혼하고 아이도 빨리 낳으라고 권해요. 특히 아이가 두 돌이 되기까지는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30대에 더 큰 책임을 맡기 전, 젊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라는 거죠.”
팽 대표는 자신도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웃는다. “아이를 봐주는 게 얼마나 값지고 고마운 일인지 직접 체험했기에 손주가 생기면 육아를 맡고 싶다”고 덧붙인다.
“그룹 세브 본사의 방침 상 매출과 회사 규모 등을 공개할 수 없지만 그룹 세브 코리아는 해마다 평균 두 자릿수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팽 대표는 밝힌다. 최근 본사는 한국 지사에 대해 “그대로 하면 된다(Keep on)“는 최고의 평가를 했다. 그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사고가 긍정적이며, 액션이 빠르고, 팀워크가 잘돼 있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팽 대표의 리더십 비결은 뭘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추구한다, 이게 회사 연수 과제에서 상사, 아래 직원,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저에 대해 내린 평가예요. 문제를 그 자체 문제로 보면 자꾸 커지지만 그 본질을 보려고 하면 극복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룹 세브 코리아 팽경인 대표는...
1963년생. 이화여대 및 동 대학원 사회학과 졸업. 1988년 에이씨 닐슨 코리아(A.C.Nielsen Korea) 조사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 1989년부터 8년여 간 코닝 한국지사(현 월드키친)에서 마케팅 실무를 익혔다. 1997년 그룹 세브 코리아로 이직해 마케팅 차장, 부장, 상무, 영업 전무를 거친 후 2009년 첫 여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유럽상공회의소 주방가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기업문화가 답이다’(글로벌 기업 대표 20인 공저)가 있다.
글/계수미 전문기자 soomee@donga.com
사진/그룹 세브 코리아 제공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